국제회의 때문에, 지진 때문에… 스물 여덟 살 수능 수난사

입력
2020.04.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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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스 스터디]2005년 APEC·2010년 G20·2017년 포항지진 때문에 연기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2주 연기… 사상 첫 12월 수능 예정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해 11월 14일 인천 남동구 석정여고 앞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고3 수험생을 응원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해 11월 14일 인천 남동구 석정여고 앞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고3 수험생을 응원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대학수학능력시험 하루 전 일주일 연기와 7달 전 2주 연기. 어떤 게 더 싫으신가요?”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이 질문은 지난달 31일 수험생들이 이용하는 한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설문입니다. 수험생들의 답은 어땠을까요? 수능 전날 일주일을 연기하는 것이 더 싫다는 답변이 75%로,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 수능 전날, 갑자기 수능이 미뤄진다니 아마 수험생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일 것 같습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요?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과 3년 전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2018학년도 수능 전날 발생한 지진 때문에 수능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연기된 겁니다.

사실 수능만 다가오면 온 나라가 ‘수능 모드’에 돌입합니다. 영어듣기평가 시간 때는 비행기의 이착륙이 통제되고, 출근 시간과 증시 개장이 1시간 늦춰지기도 하죠. 수능 시행일은 입시 계획을 미리미리 세울 수 있도록 2년 전부터 일찌감치 발표하고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최우선일 것만 같은 수능. 그러나 의외로 여러 번의 수난을 겪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갑작스레 일정이 변경되기도 했고, 더 큰 국가 행사에 밀려 예정된 일정을 늦춘 적도 있습니다.

수능은 1993년(1994학년도)에 도입된 이래 네 차례 연기됐어요. 2006학년도 수능은 2005년 부산에서 아시아ㆍ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면서 당초 시행하기로 한 11월 17일에서 6일 늦춰진 11월 23일에 치러졌습니다.

물론 연기 결정이 갑자기 이뤄진 건 아니에요. 일정 조정은 수능 시행을 약 1년 앞둔 시점부터 나오던 얘기였어요. 부산에서 APEC 정상회의를 열게 됐는데, 공교롭게도 수능 예정일 다음날 개최하게 되면서 정부 내에서 날짜 조정이 불가피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온 겁니다. 각국 정상들이 수능 당일에 입국할 가능성이 높았거든요. 교육부는 당초 시험일을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항공기 이착륙 금지와 교통 통제 등을 감안해 일정 조정에 합의했어요.

2018학년도 수능 시험장 중 한 곳인 광주 서구 화정동 광덕고 정문에 2017년 11월 16일 수능 연기를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있다. 광주=연합뉴스
2018학년도 수능 시험장 중 한 곳인 광주 서구 화정동 광덕고 정문에 2017년 11월 16일 수능 연기를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있다. 광주=연합뉴스

수능은 5년 만에 또 한 번 위기 아닌 위기를 맞았어요. 또다시 연기될 처지에 놓인 건데요. 왜 그랬던 걸까요? 2006학년도 수능이 연기됐던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수능 시행일이었던 2010년 11월 11일에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를 열게 된 겁니다. 이에 11일에서 일주일 늦춘 18일에 시행하게 됐어요. 당시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같은 해 2월 19일에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면서 “G20 정상회의로 인한 교통 통제, 경찰 인력 부족, 각국 정상의 차량이동 시 소음발생 등이 수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아예 시험일을 늦추기로 했다”고 연기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죠.

다른 일정과 겹쳐 일찌감치 수능을 연기한 과거와는 달리 갑자기 수능을 연기한 사례도 있었죠. 2018학년도 수능은 지진 때문에 일주일 연기됐어요. 그것도 수능을 바로 하루 앞둔 시점에서요.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시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는데요. 고사장으로 쓰일 예정이던 학교 건물 일부에서 균열이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여진의 위험성도 남아있었고요. 이에 11월 16일에 예정대로 치르려던 수능은 갑작스레 11월 23일로 미뤄졌습니다. 재해ㆍ재난으로 인해 수능이 연기된 건 이때가 처음이었어요. 당시 일부 수험생들은 이미 수험서를 다 버려 당황해 하기도 했었죠. 그러나 많은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위험을 감수한 채 시험을 치르기 보단 연기가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11월 19일 치를 예정이었던 2021학년도 수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개학이 미뤄지는 등 학사 일정이 변경되면서 덩달아 늦춰졌습니다. 올해는 2주가 늦춰진 12월 3일에 치러질 예정입니다. 사상 첫 12월 수능입니다. 아마 많은 수험생들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텐데요. 남은 8개월 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모두 좋은 결과 있길 바랍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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