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FC ‘주방의 플레이메이커’ 손맛에… 별 3개 쏜 ‘데슐랭’

입력
2020.04.06 07:00
수정
2020.04.06 08:0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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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클럽 맨] <4> 대구FC 조리사 17년차 김경미씨

#K리그는 팬들과 접점인 선수와 지도자는 물론, 구단이 운영되는 데 없어선 안 될 수많은 스태프들의 노력아래 성장하고 있습니다. 구성원 가운데도 한 자리에 오랜 시간 머물며 K리그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원 클럽 맨’들의 삶과 보람을 전합니다.

대구FC 클럽하우스 조리사 김경미씨가 구단 클럽하우스 내에서 미소짓고 있다. 대구FC 제공
대구FC 클럽하우스 조리사 김경미씨가 구단 클럽하우스 내에서 미소짓고 있다. 대구FC 제공

“마마, 음식 너무 맛있어!”

프로축구 K리그1(1부리그) 대구FC 클럽하우스 주방을 책임지는 김경미(49) 조리사는 이번 시즌 대구에 입단한 ‘반(半) 한국인’ 용병 데얀(39ㆍ몬테네그로)의 ‘엄지 척’이 무척이나 고맙다. 지난 2007년 인천을 시작으로 서울, 수원을 거치며 한국생활만 10년 넘게 한 데얀은 ‘데슐랭(데얀+미슐랭) 가이드’를 써도 될 정도의 ‘클럽하우스 맛집’ 경험가. 구단에 따르면 데얀은 구단 식단에 ‘별 3개 만점’을 내렸다고 한다.

데얀이 인정한 대구 숙소 식당의 대표 메뉴는 항정살 김치찜. 박종환(82) 전 대구 감독이 직접 해 오던 김치찌개를 응용한 메뉴다. 올해로 대구 숙소 식당을 17년째 지키고 있는 김경미 조리사는 본보와 인터뷰에서 “모든 선수들이 아들 같지만, 외국인 선수들이 숙소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김씨의 레시피는 대부분 독학으로 개발됐다. 대구 창단 초기인 2004년 4월 ‘주방 보조’로 들어와 그릇부터 닦았던 그는, 조리사가 계속 바뀌는 바람에 속 썩던 구단으로부터 “요리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아 약 2년 만에 조리사로 ‘승격’했다. 대구 외곽 연수원에서 셋방살이하며 제대로 된 주방조차 갖추지도 못한 환경이지만,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이겨냈다.

김경미 대구FC 조리사가 동료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대구FC 제공
김경미 대구FC 조리사가 동료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대구FC 제공

문제는 요리솜씨. 김씨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김치 정도나 담글 줄 알았지 사실 전문 요리사라고 할 순 없는 실력이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방법은 노력뿐. 그간 어깨너머로 배운 음식들을 차근히 해보고, 무엇보다 선수단 규모에 맞는 ‘대량생산’의 요령을 터득했다. 이젠 추어탕, 복국, 꼬리곰탕, 갈비찜 등 메인 요리들은 웬만한 맛집 안 부러울 정도의 맛을 자랑한다.

일에 대한 자부심은 무엇보다도 구단의 극적인 성장과 함께 부풀었다. 김씨는 “재작년 대구가 FA컵에서 우승한 뒤 홈 구장을 옮기고, 인기도 확 늘어나면서 지인들의 부러움을 많이 산다”면서 “나는 그저 17년동안 한 자리를 지켜오며 내 할 일 하고 있었는데, 최근 몇 년 선물 같은 시간들이 이어졌다”고 했다. 지인들의 선수 사인 청탁이 줄을 이으면서 구단 인기를 실감한단다. 지난해 홈 경기 응원을 갔을 때 올림픽대표 김대원(23)이 관중석에 있는 자신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을 때 주변 관중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기억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김경미 대구FC 조리사가 구단 클럽하우스 내 주방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대구FC 제공
김경미 대구FC 조리사가 구단 클럽하우스 내 주방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대구FC 제공

사실 구단의 성장은 주방에서부터 예견할 수 있었단다. 김씨는 “예전엔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야채를 많이 남기는 등 편식이 심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식당에서 권하는 음식을 고루 섭취한다”고 했다. 작은 식습관 하나부터 진짜 프로선수로 거듭나고 있단 얘기다. 김씨는 “경기 하루 전과 당일엔 짜거나 기름진 음식은 피한다”면서 “경기 당일 생일을 맞은 선수들에겐 미안하지만 경기 날엔 일부러 미역국을 안 내놓는다”며 웃었다.

선수단 식사를 챙기기 위해 오전 7시 20분 출근해 오후 7시를 넘겨 퇴근(점심-저녁식사 사이엔 휴식)하던 일상이 반복되면서, 가족들 식사를 소홀히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크단다. 김씨는 “딸이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4살 때 이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대학생, 고등학생이 됐다”며 “새벽부터 일터로 나가는 엄마를 원망하기보다 걱정해주고 응원해 준 아이들에게 고마움이 크다”고 했다.

가난한 시민구단에서 K리그 대표 인기구단이 돼 기쁘지만 이 곳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대표팀 수문장 소원까지 이룬 조현우(29ㆍ울산)를 떠나 보낸 건 무척 아쉽다. 김씨는 “(조현우가)내 아들을 위해 유니폼 선물도 챙겨주고, 떠날 땐 직접 인사를 못해 미안하다는 메시지도 보내 줘 고마웠다”면서 “(조현우가)어딜 가든 잘 할 거라 믿고, 꼭 유럽진출의 꿈도 이루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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