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자하 하디드의 궤도(3.31)

입력
2020.03.3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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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궤도를 도는 행성"이란 평을 들은 건축가 자하 하디드. zaha-hadid.com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궤도를 도는 행성"이란 평을 들은 건축가 자하 하디드. zaha-hadid.com

자하 하디드(Zaha Hadid, 1950.10.31 ~ 2016.3.31)는 여성 건축가로선 최초로 2004년 ‘프리츠커 상’, 2016년 왕립 영국건축가협회 골드메달을 수상한 이라크 출신 영국의 세계적 건축가다. 2014년 완공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가 2007년 서울시의 DDP 지명 초청전에 참가해 당선한 그의 작품이다.

그는 직선과 평면은 죽어서 누울 관 하나면 충분하다고 여긴 건축가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다양한 곡률(曲率)로 출렁이는 외형을 지녔다. 비선형ㆍ비 유클리드 기하학적 미학의 극단을 밀어온 그 경향을 두고 건축계는 해체주의 건축을 들먹이곤 했지만, 생전의 그는 일관되게 ‘뭔 소리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생방송 TV 인터뷰 중에도 질문이 거슬리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만큼, 좋게 보면 당당했고 나쁘게 보면 무례하고 오만했다. 그의 건축 스승이자 멘토인 렘 쿨라스(Rem Koolhaas)는 세간의 뾰족한 평판을 애정으로 뭉툭하게 갈아 “하디드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 자신 만의 궤도를 도는 행성”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라크 유력 정치인의 딸로 바그다드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기를 영국에서 보냈고, 아메리칸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72년 영국건축협회 건축학교(AA School of Architecture)를 졸업했다. 79년 독립하기까지 그는 렘 콜하스의 건축사무소(OMA)에서 일하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모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그의 전위적인 설계작들은 공모전에서는 찬사를 받았지만, 시공의 난점과 비용 때문에 오랫동안 도면으로만 존재해야 했다. 사실상 첫 작품인 94년 독일 비트라(Virtra) 소방서 건물이 선 뒤에야, 그는 비로소 현실의 건축가로서 자신의 궤도를 돌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은, 과도한 건축비 때문에, 실용성보다 미학을 중시하는 ‘예술적 자의식’ 때문에, 주변과의 조화보다는 스스로 돋보이기를 원했던 탈(脫) 맥락의 성향 때문에 자주 비판받았다. 물론 까칠한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는 더 험한 말로 비평에 독설을 퍼붓곤 했다. 그는 “나 싫다는 이들 중에 구체적인 이유를 내게 직접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를 통제하지 못하니까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거라고 난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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