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위원장 의원’

입력
2020.03.27 18:00
수정
2020.03.29 10: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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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가운데)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민주노총 조합원 21대 국회 비례후보 합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환(가운데)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민주노총 조합원 21대 국회 비례후보 합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조인이나 교수만큼 선호하지는 않지만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꾸준히 노동계 지도자들을 영입해 왔다. 20대 국회에는 여당과 제1 야당에 노총위원장 출신 의원 3명(문진국, 이용득, 장석춘)이 포진해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상황은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지난해 경사노위의 탄력근로제 합의를 이끈 김주영 전 한국노총 위원장(더불어민주당 경기 김포갑), 정보기술(IT) 업계의 장시간 노동 관행을 고발하는데 일조한 류호정 전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 선전홍보부장(정의당 비례대표) 등 노동계 인사 20여명이 여의도행 출사표를 던졌다.

□ 과거에는 권력에 대한 협조를 ‘대가’로 금배지를 단 뒤 명예직처럼 4년을 보낸 노동계 지도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1인 2표의 정당투표제가 도입된 17대 국회(2004년)에서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를 표방한 민주노동당이 노동계 리더였던 권영길, 단병호, 심상정을 중심으로 10명의 의원을 배출하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들은 당시 비정규직 사용 기간 연장을 시도한 참여정부의 우경화를 견제하는 등 주변부 의제로 취급받던 노동문제의 이슈 파이팅을 주도하며 신선한 노동 정치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등으로 이들의 활약은 전설처럼 희미해졌지만, 기존 보수 정당들은 꾸준히 노동계 지도자들을 인력풀로 삼았다. 하지만 새로 영입된 ‘위원장 출신 의원’들의 존재감은 희미했다. 노동계급의 세력화든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한 공공성 강화(복지정치)든 이들은 당초 기대되던 성과를 별로 보여 주지 못했다는게 노동계 안팎의 평가다. 계급 이익보다 지역 이익이 중시돼 노동 분야 전문성을 발휘하기 힘든 국회의 구조적 문제도 있지만, 노동문제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의원 개인의 정책 역량 부족 때문이다.

□ 증가하는 플랫폼 노동자 보호문제, 정규직ᆞ비정규직 격차 해소, 인공지능(AI) 보편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 타협적 노사관계를 이룰 제도 개선 등 21대 국회가 풀어야 할 노동문제가 산적해 있다. 국회에 진출할 노동계 지도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특히 이들 상당수는 ‘이기적인 귀족 노조’라는 비판을 받는 기존 노동조직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형편이 나은 기득권 노동을 옹호하다간 자칫 대중의 거부감을 사기 쉽다. 21대 국회에서 노동계 출신 예비 정치인들의 각성과 분발이 필요한 이유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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