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농촌, 치유의 공간이 되다

입력
2020.03.27 04:30
수정
2020.04.01 11:22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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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수가 800만명을 돌파했다. 이러한 고령화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위한 다양한 복지서비스와 요양시설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열악한 환경과 비인간적인 관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드 호허와이크’ 요양원이 있다. 2009년에 설립된 이곳은 치매환자들을 위한 보호 거주 지역으로, ‘치매마을’이라 불린다. 이 작은 마을에는 한 울타리 안에 여러 유형의 주택들과 광장, 카페, 식당, 미용실, 스포츠 센터, 음악 감상실, 극장 등의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다. 전문교육을 받은 직원들은 치매환자들이 건강하고 자립적인 삶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공감과 소통을 통해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치매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침상에 누워 여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환자들이 마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여유로운 일생을 보내도록 도와준다.

이처럼 고령화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농촌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과거 농촌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곳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픈 자들이 방문하여 요양을 하거나 치료를 받던 곳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도시에 병원과 요양시설이 들어섬에 따라 건강 회복을 목적으로 농촌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현대사회에서 농장의 치유 기능이 점차 사라져가는 듯했지만, 최근 현대인들이 다시 자연적 치유에 관심을 보이면서 돌봄과 농업의 만남인 ‘케어팜(Care Farm)’이 등장했다. 케어팜은 돌봄이 필요한 모든 사회적 약자들에게 농촌의 자연환경에서 정신적ㆍ육체적 치유와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농업이다. 이들은 개인의 건강상태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신체운동, 동물 돌보기, 텃밭 가꾸기, 휴식 등의 일에 참여할 수 있다.

노르웨이, 이탈리아, 벨기에 등 대부분의 EU 국가에서는 이미 케어팜이 사회복지의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케어팜을 처음 시도한 네덜란드에는 1,200개 이상의 케어팜과 연간 2만명의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케어팜은 1980년대 중반, 간호계에 종사하던 농장주의 부인들이 농장에서 환자를 돌보며 시작되었으며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주로 소규모 가족농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노인성 질환, 지적장애, 자폐증, 사회 부적응 등을 앓고 있는 많은 소외 계층을 상대로 케어팜을 운영하고 있다.

필자는 작년에 네덜란드의 ‘린던호프오펀따윈’ 케어팜을 방문했다. 그곳은 약물 중독이나 정신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자연과 심리적 안정을 통한 치유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중 15세에 미혼모가 되어 35년 동안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되었던 사스키아라씨를 만났다. 그녀는 11년간 케어팜에서의 꾸준한 치유를 통해 중독에서 벗어나, 이제는 환자가 아닌 농장의 봉사자로 활동 중이다. 이렇듯 케어팜은 치료뿐만 아니라, 사회로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美ㆍ感ㆍ快ㆍ靑(미ㆍ감ㆍ쾌ㆍ청), 아름다움과 감동, 쾌적함과 푸르름이 있는 우리 농촌이 치유의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농협도 고령 농민을 치유할 수 있는 케어팜 등을 신설해 농민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난 6일에는 국민 건강증진을 위한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케어팜의 체계적인 연구 및 지원을 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는 ‘한국형 케어팜 모델’을 만들어, 우리의 아름다운 농촌이 모두에게 넉넉하고 따뜻한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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