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거대 양당의 뻔뻔한 위성정당 소동

입력
2020.03.2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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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활용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위 사진은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아래 사진은 이달 20일 미래통합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 오대근 기자.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활용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위 사진은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아래 사진은 이달 20일 미래통합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 오대근 기자.

점입가경이다. 게다가 전대미문이다. 비례위성정당을 활용한 거대 양당의 의석 수 경쟁 얘기다. 이들이 나란히 공직선거법을 무색하게 하는 위성정당으로 법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것은 차라리 약과다. 여기에 더해 공천 갈등, 부실 졸속 검증 논란 등 낯부끄러운 장면도 연일 연출된다. 선거법도 선거법이지만 ‘비례대표 의원직’이라는 소명이 이리도 모욕 당해야 하는가. 현기증이 난다. 이 와중에 위성정당 활용은 상대방의 시도만이 ‘불법, 꼼수, 도둑질’이라는 주장도 거듭된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더니. 그 가능성이 설마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까지 정당화 될 수 있는가’의 온갖 여지였던가 싶어 입맛이 쓰다.

지난해 국회는 뜨거웠다. 패스트트랙 폭력 사태로 식물국회, 동물국회 논란은 있었지만 저간에서는 늘 ‘선거제 개혁’을 둘러싼 고민이 무성했다.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공직선거법 개정안이나 논의의 대상이 된 여러 수정안이 구현할 국회의 모습을 강조할 때, 여러 범여권 의원들은 때로 눈을 빛냈고, 때로 볼을 상기시켰고, 때로 희망에 목소리가 들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양당의 독주를 견제할 것이라고. 승자독식 구도 속에 사표로 돌아가는 국민들의 민의를 반영할 것이라고. 결과적으론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극단적 대결의 정치는 다신 없으리라고. 장밋빛 각오가 여의도를 물들였다.

유권자들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장밋빛은커녕 기이한 흑역사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상황을 돌이키다 보면 장밋빛을 감히 상상한 일 자체가 순진하다 싶을 정도다. 미래통합당(당시 자유한국당)은 애당초 다당제를 통합 협치의 가능성에 선을 그은 채 선거법 논의에 소극적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선거법 개혁에도 임한다는 태도를 연신 노출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 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필수적이라는 의원 정수 확대에는 거대 양당이 공히 겁을 내 논의조차 꺼렸다.

처리 시한이 임박할수록 선거법은 ‘용두사미’로 후퇴했고, 그야말로 ‘하는데 의의를 둔’ 수준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의 뼈대만 남긴 채 통과됐다. 연신 발목잡기에 나섰던 통합당은 공언대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반민주적 목적이 명백한 미래한국당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고스란히 승인했다. “정공법”을 공언하며 이를 비난하던 민주당은 자기부정에 가까운 안면몰수로 비례당을 활용하고 나섰다. 어느 시점으로 되돌려야 했을까. 되짚기가 어려울 정도다.

민주당의 비례정당 활용만이 문제일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민주당의 비례당 활용 행보만이 남긴 스산한 풍경을 부정할 순 없다. 차근차근 존재감을 키워오던 녹색당은 ‘연합당 합류 논란’과 ‘열외 사태’로 심각한 내홍에 휩싸였다. 왜 민주당과 함께 하지 않냐는 일각의 압력에 정의당은 최근 수년 사이 최대 지지율 추락 속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원칙을 지킨다’는 구호 속에 가까스로 당의 분위기를 수습한 한 정의당 인사는 말했다. “최근 논란 속에 가장 서글펐던 것은 당원들이 ‘노회찬의 마음’을 두고 서로 격렬하게 다투는 모습을 본 거예요. 누구는 노 대표가 있었으면 ‘진보정당 역할론’을 위해 참여했을 거라고. 누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숙원으로 했던 노 대표는 절대 반대했을 거라고 하면서.”

비례당 활용을 ‘촛불의 완성을 위한, 당당한 개혁의 길’로 규정한 민주당 지도부의 마음 속엔 어떤 결론이 새겨져 있을까. ‘지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길을 택해 온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면 어떤 결단을 했을까’에 대해서. 우리는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국회의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는 일, 승자독식 구도를 바꾸고, 지역주의를 탈피하고, 대화와 협치를 바탕으로 한 정치의 가능성을 키우는 일은 노회찬의 꿈, 노무현의 꿈, 더 멀리는 김대중의 꿈이었다는 것을.

김혜영 정치부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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