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반사회적 종교의 이면(3.20)

입력
2020.03.2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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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테러 사건이 1995년 오늘 일어났다. 사진은 옴진리교 예배 모습이라고 한다. middle-edge.jp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테러 사건이 1995년 오늘 일어났다. 사진은 옴진리교 예배 모습이라고 한다. middle-edge.jp

일본 옴진리교 신도들이 1995년 3월 20일 오전 8시 도쿄 지하철 차량 5편에 신경독성물질 사린가스를 살포, 시민 12명이 숨지고 5,5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각종 범죄 연루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교단이 조직적으로 벌인 무차별 살상 테러였다. 교주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 1955~2018)를 비롯한 교단 간부 13명은 지리한 재판 끝에 사형이 확정됐고, 2018년 7월 쇼코 등 7명의 형이 집행됐다.

요가 ‘구루’ 쇼코는 1984년 요가 도장 ‘옴진리회’를 열었다. 그는 옛 예언서를 수련해 공중 부양도 해내는 초능력자로 자신을 치장하며 신도를 모았고, 1987년 도쿄 시부야에서 ‘옴진리교’를 설립해 1989년 종교법인 인가를 받았다. 현세는 악이며 현세에 물든 인간도 ‘더러움’에 찌든 존재여서, 오직 수련과 교리 학습을 통해 초인간이 되는 길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게 교리의 골자였다.

요가 수련으로 육체적 건강과 영적 안정을 얻겠다는 ‘상식적’인 선택으로 그 교단에 발을 들인 수많은 ‘평범한’ 이들이, 반복된 교리 학습과 선행자들의 높은 내공 즉 교단 내 계급 상승과 존경의 유혹에 현혹돼 ‘비상식적’인 신념을 지니게 되는 과정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논픽션 ‘언더그라운드’와 관련자 인터뷰 ‘약속된 장소에서’, 소설 ‘1Q84’로 남겼다. 하루키는 저 일련의 작업을 통해 상식과 비상식, 사회와 반사회의 경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사회의 소위 ‘안전지대’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으며 1995년 그날의 도쿄 지하철과 시부야의 평화로운 거리가 얼마나 같고 다른지, 다를 수 있는지 우려했다.

하루키는 수련의 상식(건강과 평화)이 비상식적 신념으로 전이하는, 즉 세뇌되는 과정의 해답을 ‘기억’이라는 작용에서도 탐구했다. 그는 기억을 사건이나 현상 그 자체가 아니라 저마다 수용하고자 하는 바를 편의적으로 재편해 지니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앞서 밀란 쿤데라는 ‘잃어버린 현재를 찾아서’라는 에세이에서 “추억(기억)은 망각의 한 형태”라고 쓴 적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망각을 포함한 편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한계는 인간의 한계이고, 사이비 종교의 유혹은 ‘원래 이상한 사람’들에게만 스미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자 했던 듯하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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