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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입맛과 잇속에 맞는 것이라면 거짓과도 거래하는 건 이미 언론이 아니다. 그러니 ‘언롱(言弄)’이니 ‘기레기’라는 말을 듣는다. ©게티이미지뱅크

“로마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VII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허위 정보였다.” ‘가짜뉴스의 고고학’(최은창, 동아시아)에 나오는 대목이다. 카이사르의 양자였던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는 후계자 자리를 두고 싸웠다. 어린 옥타비아누스는 물리적 전투뿐 아니라 허위 정보 프로파간다를 최대한 이용했다. 그는 날조된 소문을 퍼뜨렸다. 안토니우스가 바람둥이며 잘못된 길로 들어선 군인이고 클레오파트라와의 정사에 빠져 부패했으며 그녀의 꼭두각시가 되었기 때문에 결국 이집트와 동맹을 맺을 것이라는 소문. 더불어 온갖 추문을 생산해서 퍼뜨렸다. 물론 자신이야말로 로마의 진정한 가치ㆍ미덕ㆍ정통성을 수호할 인물이라는 소문을 부록으로 딸려서. 결국 안토니우스는 패배했다. 그리고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가짜뉴스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옛날 얘기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설도 명백한 가짜뉴스였다.

정보가 넘치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언제나 정보에 목말라한다. 그러나 정작 그게 옳은지 그른지는 따지지 않는다. 그 틈을 비집고 온갖 거짓 뉴스가 횡행한다. 거짓 뉴스일수록 그럴 듯하고 선동적이다. 노골적인 목적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눈여겨 살피면 걸러낼 수 있는데도 인지 부조화를 넘어 확증 편향에 빠진 상태에서는 가뭄의 단비 같기만 하다. 그걸 좋다고 사방팔방 퍼뜨린다. 심지어 ‘사명감’에 불타서.

코로나19(굳이 ‘우한 폐렴’이라고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있지만)에 대한 두려움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졌다. 나라 전체가 코로나19와 피 말리며 싸우는 중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산다. 그런데 정확하게 팩트 체크하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해야 할 언론이 노골적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리거나 퍼 나르기까지 한다. 길게 읽지 않더라도 논조가 금세 드러난다. 세계는 우리의 방역 시스템과 대응, 그리고 시민의 태도에 대해 찬탄하는데 정작 그들은 물어뜯기 바쁘다.

조선일보는 지난 9일 ‘“대구 거주자 아니다” 거짓말···서울 백병원 뚫렸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서울 백병원 입원 환자의 코로나19 확진과 관련해서 대구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보건소에서 진단 검사를 거부당했다는 내용과 함께. 국가의 보건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대구’라는 지역적으로 민감한 문제까지 은연중 드러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보도에 당혹했다. 보건소의 진료 거부는 당국으로서는 엄중한 문제였다. 의료법상 진료 거부는 처벌 대상이다. 그것도 국가의 공공기관이 국민의 위급 상황을 외면했다면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 보도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 문제가 불거지자 조선일보는 그 기사를 온라인판에서 ‘슬그머니’ 삭제했다. 당당하게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 아니라 ‘사과인 듯 사과가 아닌 듯 사과일지로 모를’ 방식이다. 해당 보도의 인물이 “마포구에 소재한 내과를 방문한 뒤 약국에 들른 후 딸의 집에 머물렀다…”고 문구를 수정했을 뿐이다. 그는 도대체 취재를 하기는 한 것인가? 이런 일들이 이 한 가지뿐이었을까?

기사를 ‘쓴’(취재 보도가 아니라) 기자는 페이스북에 올린 후기 형식의 글에서 스스로 오보임을 시인했다. “오늘 마포구에 확인한 결과, 할머니는 마포구 한 내과를 방문했지만 마포구 보건소에는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잘못된 정보를 일부 전해드린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지만 정작 자신이 왜 그런 그릇된 내용을, 그것도 지금처럼 극도로 예민한 시기에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기사를 ‘써댔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기자는 회사에, 회사는 기자에게 문의하라는 핑퐁게임으로 뭉갰다. 오보에 대한 사과 기사는 해당 기사보다 훨씬 더 큰 지면에 상세하게 밝혀야 그 진정성을 인정받는다. 마지못해서 지면 한 귀퉁이에 보일 듯 말 듯(보지 말라는 의미다) 짧게 몇 줄 올리면서 마치 큰 인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굴거나 온라인판에서 삭제했으니 된 거 아니냐며 눙치는 건 앞으로도 언제든 그런 가짜뉴스를 생산 유통하겠다는 심산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온 나라와 시민이 고통스럽고 민감한 시기다. 자신들의 입맛과 잇속에 맞는 것이라면 거짓과도 거래하는 건 이미 언론이 아니다. 그러니 ‘언롱(言弄)’이니 ‘기레기’라는 말을 듣는다.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한다. 위의 책에서 “개인들이 만드는 유튜브 영상이나 메신저 서비스를 타고 떠도는 가짜뉴스는 언론의 정파적 기사나 부정확한 보도를 씨앗 정보로 삼아 흉내를 낸다”는 말을 곱씹어야 한다. 우리가 주체적 정보 소비 주권자로 제대로 정보를 소비해야 한다. 가짜뉴스와 나쁜 언론을 추방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이 반갑고 고맙다. 우리 모두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다. 가짜에 휘둘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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