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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대응이란 사람을 ‘갈아 넣어’ 완성된다. 일선 방역 인력들은 주 90시간 이상 근무가 예사에, 밤을 새며 30~40시간씩 연속 근무를 하는 일도 적잖다. 사진은 연합뉴스

‘늑장 대응보다는 과잉대응이 낫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귀에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다. 하루 이틀 듣던 얘기가 아니라, 신종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똑같은 얘기들을 한다. 얼핏 그럴싸한 얘기긴 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사실 따져 봐야 할 일이다.

잠깐 5년 전 메르스 유행 때로 시계를 돌려보자. 그때도 정치권은 과잉대응이 낫다며, 방역복을 입고 지하철 역사를 소독하고, 지역감염을 운운하며 확진자의 동선을 시분 단위로 공개했다. 그러나 사실 메르스는 원래 인간–인간 감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병원이다. 의료행위 중에 폐에 있던 바이러스가 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유독 메르스 유행이 번진 것은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소독약을 뿌려대며 지역감염의 공포를 조장했던 정치권의 과잉대응은 사실 행정력의 낭비에 불과했다. 메르스는 병원외 감염이 없었으니까. 대응은 그냥 과잉이어서 만은 안 된다. 역량을 쏟아 부을수록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그 대응이 전략적으로 ‘제대로’ 된 것일 때 얘기다.

다시 코로나19로 돌아오면, 코로나19는 메르스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바이러스다. 치사율은 낮지만 감염력이 매우 강해서 일상생활에서도 감염될 수 있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은 메르스보다 더 길고 어렵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범세계적 유행에도 침묵하던 세계보건기구도 결국 팬데믹을 선언했다.

장기전이 될수록 전략은 더욱 중요해진다. 과잉대응으로 인한 자원 낭비는 훗날의 부담이 되어 돌아온다. 그냥 돈을 쏟아 부으면 되는 일이라면, 돈이야 얼마든지 써도 좋다. 문제는 방역이란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것이다. 과잉대응이란 사람을 ‘갈아 넣어’ 완성된다. 일선 방역 인력들은 주 90시간 이상 근무가 예사에, 밤을 새며 30~40시간씩 연속 근무를 하는 일도 적잖다. 일요일도 없이,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한 달, 두 달을 연속으로 일하고 있다. 탈이 안 날 수가 없다.

비상등이 켜진 지는 오래 되었다. 전주와 상주에서는 과로로 공무원이 사망했고, 복지부 소속 공무원은 뇌출혈로 쓰러져 중태다. 아무리 빗대는 말로 전쟁이라 부른다지만, 진짜 일선 인력들이 사지에 몰리고 있다. 누군가 또 과로로 쓰러져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이런 과잉대응을 지속한다면 그건 살인이나 진배없다.

대규모 집단 감염의 진앙이 된 대구나 경북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진앙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데다 확진자도 한 손에 꼽는 지역들, 심지어 서북단 끝에 있는 파주 같은 지역까지 완전히 똑같이 인력을 갈아 넣고 있다.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인력을 소모해서야 진짜 비상 상황에 대응할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장기전에서 가장 귀한 자원은 사람이다.

하필 총선 시즌이라 정치도 과잉이다. 야당은 정부를 공격할 수만 있다면 어떤 선동이든 마다 않을 기세고, 정부도 표심을 의식하느라 과잉대응 전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언론은 유의미한 정보 대신 공포와 잡음을 조장하고, 유튜버는 이 상황을 가짜뉴스를 팔 절호의 기회로 삼는다. 이 모든 과잉이 모여 무의미한 자원 낭비를 강요한다. 지자체들은 누가 더 일선 인력들을 갈아 넣느냐로 경쟁을 벌인다. 그럴수록 마치 일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나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장기전에서 가장 귀한 자원이다.

뭐 대단한 전략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방역에 더 많은 사람을 투입하고 효율적으로 체제를 조직할 것.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는 쉴 시간을 줄 것. 밤샘근무 다음 날이라면 특히. 언제 터질지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되, 남은 시간에는 동력을 보존하고 주기적으로 재충전할 것. 이게 정녕 어려운 과업인가. 이 정도도 지키지 못한다면 과잉대응은 그저 역량을 좀먹는 독이 될 뿐이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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