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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는 건조해 보이나 ‘넵’은 의욕적으로 보이며 ‘넹’은 귀여운 느낌이 든다. ©게티이미지뱅크

“학생이 그런 데 가면 돼? 당장 반성문 써 와!”/ “넹.” 드라마에서 선생님이 잘못을 한 학생을 혼내고 있다. 그런데 학생이 냉큼 뒤돌아서며 ‘넹’이라 대답한다.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학생이 선생님의 화를 돋우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네’를 대신한 ‘넹’에는 어떤 기능을 기대한 의도성이 포함되어 있다.

‘예, 네’만 알고 있던 세대가 있었다. 그런데 문자로 소통하는 공간에서 ‘네’는 변신하고 있다. 넵, 뉍, 넵넵, 넹, 넴, 넨, 넷 등 다양한 변이형이 있는데, 그 중에서 ‘넵’의 기세가 드세다. 광고 소재로도 쓰이는 ‘넵’은 수직 구조, 경직된 직장 문화의 대명사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3분의 1이 윗사람에게 문자메시지로 ‘넵’이라 답하며, 사용자 과반수는 그 빈도가 갈수록 늘어난다고 답했다. 이 현상을 칭하는 넵병(病), 앵무새처럼 넵이라 한다는 넵무새란 말도 있는 것을 보면 사용자가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듯하다. 그런데도 이 말을 쓰면 자신을 더 의욕적으로 보여 줄 것이라 기대한다는 응답이야말로 직장 생활이 감정노동의 하나임을 말해 준다.

‘네’는 건조해 보이나 ‘넵’은 의욕적으로 보이며 ‘넹’은 귀여운 느낌이 든다는데,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어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보며 말의 질서를 따지는데, 한국어 표현 방식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과 외국인은 자신의 소통 경험에서 배운 것이 언어생활의 정답인 줄 안다. 심각하고 진지한 상황에서 답한 ‘넹’이 상대방에게 어떤 실수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말이든 글이든 의미만 전달하면 끝이 아니다. 잘못 알고 있는 어휘와 문법은 가르치면 되지만, 잘못 인지된 말의 느낌은 바꿀 수 없어 고민이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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