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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날갯짓이 거대한 쓰나미로 몰려와
음모론 비판하면 ‘악랄한 은폐자’로 의심
국민은 정부의 변명 아닌 설명 듣길 원해
우리 국민은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초기에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았던 이유와 마스크 대란의 근본 원인이 ‘그것’이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3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모습. 왕태석 선임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면서 한국 사회 곳곳이 마비 증상을 보이고 있다. 북적대던 명동 거리와 인천공항은 적막강산이 되었고 여행사와 영화관, 동네 치맥가게, 식당, 커피숍도 손님이 끊겨 죽을 맛이다. 문제는 이 바이러스의 실체를 아직도 정확히 몰라 국민적 불안감이 가중되는 현실에 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어떤 정보를 믿는다면 스스로도 그 정보를 믿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어떻게 모두가 다 틀릴 수가 있겠어?”라고 속삭이며 말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정보의 폭포 효과’라고 한다. 우리는 또 주위의 비위를 맞추거나 애써 얻은 자신의 평판을 잃지 않기 위해 주위에서 전해준 음모론을 믿는 척하거나 적어도 의구심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경향도 보인다. 바로 ‘평판의 폭포 효과’이다. 폭포에 접근할수록 헤어 나오기 어려운 것은 나도 모르게 주위의 의견에 휩쓸리게 되기 때문이다.

가령 누군가가 우한 바이러스의 파괴력에 관한 황당한 이야기를 지어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다고 치자. 팔로어들이 이 글을 퍼 나르기 시작하고 여기에 폭포 효과까지 더해지면 인터넷 공간은 서서히 공포감으로 달아오른다. 확산된 가짜 정보는 이제 댓글과 토론을 거치면서 집단적인 하나의 믿음 즉 음모론으로 발전한다. ‘집단극화’ 현상이다. ‘집단극화’란 비슷한 신념을 공유한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특정 이슈를 논의하면 할수록 더욱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합리적인 목소리는 위축된다. 왜냐하면 ‘음모론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대니얼 카너먼 교수의 주장처럼 ‘뭔가를 악랄하게 은폐하려는 사람’으로 의심받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집단적 광기’를 지난 2008년 5월에 시작된 광우병 사태에서 경험한 바 있다. 인간 광우병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정치 선동의 도구로 전락한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한갓 나비의 날갯짓에 불과했던 광우병 괴담들을 거대한 정치적 쓰나미로 승화(?)시키는 데는 미디어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신문, 방송, 유튜브 등의 미디어는 정보의 진실성을 파헤치기보다는 독자 혹은 시청자의 반응에 큰 관심을 둔다. 즉 정보/비정보의 코드가 작동한다. 반면 학계 등 전문가 그룹의 준거 체계는 진리/허위의 코드를 따른다. 일치된 목소리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다. 왜냐하면 연구에 시간도 걸리고 연구가 끝나도 학계 특성상 비판적 논란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일부 미디어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지지자에게 분노와 원망의 배출구를 제공하는 동시에 자신의 뿌리 깊은 신념을 정당화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예를 들어 입맛에 맞는 얼치기 폴리페서를 불러다가 그의 입을 통해 미디어가 원하는 주장을 쏟아내는 방식이다. 혹은 언변과 궤변으로 무장한 비전문가를 동원해 전문가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작업도 서슴지 않는다.

코로나19의 위험에 대한 평가는 현재로서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전문가는 ‘100% 안전하다’는 근거가 없다면 그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전문가는 ‘99% 안전하다’면 위험성을 과장하기보다 오히려 위험이 적음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력에 주목, 출입국 조치를 엄격하게 취하는 반면 어떤 정부는 ‘따뜻해지면 곧 소멸될 바이러스’라며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라도 정부의 정책 결정은 그 근거와 논리가 명확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초기에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았던 이유와 마스크 대란의 근본 원인이 ‘그것’이다. 정부의 그럴듯한 변명이 아니라 진솔한 설명을 듣고 싶다. 정보의 단절과 고립이야말로 망국적 음모론이 번성할 토양을 제공하기에 그 마음은 더욱 간절하다. 정치라는 꼬리에 휘둘리지 않고 몸통을 지켜내는 지혜가 지금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기에 하는 말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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