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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교육, 그리고 스스로 편집권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수많은 여성을 위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내 주변에서 가장 많이 읽는 책은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이다. ‘배움의 발견’이라는 제목과 빌 게이츠, 오바마가 추천했다는 띠지의 문구, 케임브리지 박사라는 저자의 이력 때문에 평범한 자기계발서인가 하게 되지만, 예상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타라 웨스트오버의 아버지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으며 곧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르몬교 근본주의자로, 공교육과 정부와 의료 기술에 대한 불신 때문에 자녀들을 학교에도, 병원에도 보내지 않았다. 부지런히 폐철을 모아 번 돈은 세상의 종말을 대비해 모두 연료와 식량을 구매하는 데 사용했고, 때문에 타라의 집은 열심히 일하는 데도 늘상 궁핍한 처지를 벗어날 수 없었다. 7남매 중 막내딸이었던 타라는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학교에 다니지 못한 채 온종일 부모를 도와 일했으며(타라의 부모는 이것을 ‘홈스쿨링’이라고 불렀다), 대입자격시험에 합격해 열일곱에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부터야 비로소 교육받을 수 있었다.

500쪽이 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며 몇 번이나 놀라야 했는데 첫째, 타라의 가족들이 다치고 죽을 고비를 너무 많이 넘겼다는 것, 둘째, 그 정도로 사람이 다치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고 동종요법으로 치료하면 된다고 믿는 타라의 아버지와 어머니, 셋째, 소설이어도 읽으면서 고통스러웠을 이 이야기가 모두 실화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녀 중 유일한 여성인 타라가 지속적인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과 폭력에 시달렸음에도 그것이 큰 문제라는 걸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타라는 몸을 약간 드러내는 의상을 입거나 립글로스만 발라도 아버지와 오빠로부터 ‘창녀’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한 오빠는 타라가 조금만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으면 그의 머리채를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가 변기물에 처박는 등 폭력을 일삼았다.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뜻이었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뭔가 불순한 요소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와 오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고 믿었던 타라는 교육을 받기 시작하며 자기 자신을, 가족을, 세상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내 주변의 작은 동그라미 바깥에 있는 세계까지 시선을 넓힐 수 있다는 뜻이다. 폭력을 구별하고 거부할 수 있는 힘과 상처에 둔감해지지 않는 감각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아버지나 오빠가 아니라 나의 관점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교육 덕분에 타라 웨스트오버는 과거와 현재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해석하고 기록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고, ‘배움의 발견’은 ‘홈스쿨링으로 교육받은 여성의 케임브리지 입성기’ 같은 타라 개인의 성공기가 아니라 여성에게 교육, 그리고 스스로 편집권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수많은 여성을 위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엊그제부터 나는 봄알람에서 펴낸 ‘김지은입니다’를 읽기 시작했다. 정치인에게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했지만 피해를 인정받는 대신 끊임없이 피해자다움과 진실성을 요구받고 의심받아야 했던 여성이 직접 써 내려간 554일간의 기록이다. 오로지 김지은 자신의 관점으로 써 내려간 이 이야기에는 그를 향한 의심 따위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는 ‘꽃뱀’이나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여성들을 위해서라도 폭력을 직시하고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한 사람, 어떻게든 살아나가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김지은은 이렇게 썼다.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기록을 남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황효진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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