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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라 자나는 가난한 국가 빈민들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자립-자존의 터전을 마련해주는 비영리 '임팩트 소싱' 기업 '사마소스(Samasource)'의 설립자다. 그는 2008년 이래 케냐 우간다 등 아프리카 국가와 인도 파키스탄 빈민 1만 1,000여 명을 고용해, 5만여 명을 가난과 절망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는 원조가 아닌 노동의 기회야말로 인간 존엄과 자유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samasource.com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사마소스(Samasource)’는 구글 아마존 월마트 GM 등 포춘 50대기업 약 25%와 계약을 맺고, 인공지능 기반 사업을 위한 기초 데이터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기초 데이터(training data)’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과 딥러닝(deep learning)에 필요한 초기 정보로, 무인 자동차 시스템에겐 도로에서 마주칠 수 있는 장애물이나 도로 표지판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사진 콘텐츠 기업인 ‘게티 이미지’의 경우 독점적으로 확보한 유명인의 인물 사진들을 자동 식별ㆍ분류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얼굴 대부분을 가린 사진 등 컴퓨터가 골라내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그런 사진들을 직접 분류해 컴퓨터가 학습할 수 있도록 입력하는 게, 예컨대 사마소스의 일이다. 정보 변수의 회귀분석(Regression)처럼 더 복잡하고 전문적인 업무도 있지만, 그것도 상대적으로 간단한 기능 훈련만 받고도 해낼 수 있도록 업무를 최대한 세분화(micro-works)해 수행한다.

사마소스는 2000년대 등장한 대표적인 ‘임팩트 소싱(Impact Sourcing)’ 기업이다. 임팩트 소싱은 기부나 후원 등 직접 원조 대신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가난한 국가 시민들이 스스로 경제적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 인간 존엄을 회복하게 하려는 비즈니스 모델을 일컫는 말이다. 사마소스 직원 대부분도 케냐와 우간다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빈민지역 주민이다. IT 국제분업이라는 뜨거운 성장분야를 공략한 성공적 임팩트 소싱 기업으로 꼽히는 사마소스 그룹은 2008년 창업 이래 총 1만 1,000여 명을 고용해 가족 포함 약 5만여 명을 절대적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게 했다.

특히 사마소스는, IT 전문매체 ‘테크 크런치’ 보도에 따르면,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비롯해 관리직급 직원의 60% 이상이 모두 여성인.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기업이다. 현지 신입 사원도 50% 이상은 반드시 여성이어야 한다는 게 기업 원칙 중 하나인데, 그건 “여러 조사 자료들로 입증된 바, 여성이 번 돈은 가족에게 재투자- 교육, 건강, 가족의 안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마소스의 ‘사마(Sama)’는 산스크리트어로 ’평등’이란 뜻이다. 그 평등은, 물론 ‘출생의 복권(Birth Lottery)’을 잘못 뽑아 기회와 조건을 박탈당한 이들의 사회ㆍ경제적 불평등을 겨냥한 평등이지만, 거기에는 젠더 불평등에 공세적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일자리(work)야말로 인간 존엄과 자유의 바탕”이라고 주장하며 사마소스를 창업해 12년간 이끌어온 기업인 겸 사회사업가 레일라 자나(Leila Janah)가 희귀 암인 상피모양 육종(epithelioid sarcoma)으로 1월 24일 별세했다. 향년 37세.

자나(본명 Leila Chirayath)는 인도 이민자 부부의 딸로 1982년 10월 9일,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의 뉴욕 주 루이스턴(Lewiston)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건설 기술자였지만 벌이가 좋지 않았고, 인도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어머니는 식당 주방일로 가족 생계를 도와야 했다. 가족은 캘리포니아 LA에 정착하기까지 애리조나 등지를 돌며 12번이나 이사를 다녔고, 다툼도 잦아 청소년기 자나에게 가정은 안정적인 소속감을 주는 공간이 아니었다고 한다. 자나는 부모 이혼 직후 어머니의 성(Janah)를 택했다. 다른 피부색과 어색한 억양, 늘 싸구려 옷만 입고 다니던 상시 전학생 자나에겐 학교도 정을 줄 만한 곳이 아니었다. 대신 그는 고교 시절부터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와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회원으로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고교 졸업반이던 17세 때 미국 비영리 청소년국제교류재단(AFS)이 운영하던 아프리카 교육 봉사 프로그램에 자원한 것도, 일종의 도피이자 탈출이었다. 그는 가나 남동부 아쿠아펨(Akuapem)이란 가난한 마을에서 6개월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맹인 교육을 위해 점자를 익혔다. 도망치듯 찾아 들었던 그 곳에서 그는 자기가 겪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상상도 못한 절망과 가난의 억압을 보게 됐다고 훗날 말했다.

자나는 하버드대에 진학해 아프리카 지역개발을 전공하며 방학 때마다 모잠비크와 세네갈 르완다 등지를 다녔고, 세계은행 개발 원조 프로젝트와 국제 NGO 활동에도 참여했다. 대학 모의 유엔 총회땐 사무총장으로 나서기도 했다.(leilajanah.com) 그러면서도 그는 바 웨이트리스나 기숙사 화장실 청소 등 쉴 틈 없이 일을 해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2005년 졸업 후 그는 뉴욕에 본사를 둔 한 국제 경영 컨설팅 회사(Katzenbach Partners)의 컨설턴트로 취직, 얼마 뒤 인도 뭄바이의 지사로 발령 받았다. 그에겐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이 있었다.

‘임팩트 소싱’의 원조는 2001년 제러미 호켄스타인(Jeremy Hockenstein)이 캄보디아 프놈펜에 설립한 ‘디지털 디바이드 데이터(DDD)’란 기업이다. 그는 캄보디아청년들이 “세계화에 희망을 품고” 인터넷 카페에 모여 영어 공부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그 회사를 설립했다. 하버드대를 거쳐 MIT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고 ‘매킨지& 컴퍼니’의 경영 컨설턴트로 일한 이력을 지닌 호켄스타인의 활약을 자나 역시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나는 뭄바이의 슬럼을 보고, 거기서 매일 릭쇼를 타고 출퇴근하는 직원을 보고, ‘임팩트 소싱’의 가능성을 따져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지 일이란 게 굳이 대학을 나와야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대학을 안 나오면 외국계 기업에 이력서는커녕 회사 로비에 발을 디밀기조차 힘든 분위기였다.(wired.com) 그는 ‘회사를 아예 슬럼지역에 차려 그들을 고용해 운영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나는 2008년 직장에 사표를 낸 뒤 스탠퍼드대 국제정의 프로그램과 호주국립대 공공윤리 및 응용철학센터 방문학자로 적을 두고 창업을 준비했다. 자신의 창업 프로젝트로 스탠퍼드대 사업플랜 경연대회에서 우승해 상금 1만 4,000달러를 탔고, 유럽 경연대회에도 출전해 상금 3만 달러는 벌었지만,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자본가들을 찾아 다니기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러다 용케 한 비영리단체의 점자 책 디지털 작업 3만 달러 프로젝트를 수주한 게 돌파구였다. 그는 컴퓨터 넉 대를 갖고 케냐 나이로비에서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던 지인을 설득해 사마소스를 창업해 현지인들을 채용해 그 일을 해냈다. 그게 첫해 유일한 매출이었다. 케냐의 평균 실업률이 40%를 넘나들던 때였다. 사마소스는 4년 뒤인 2012년 임금으로만 200만 달러를 지급하는 기업이 됐다.

사마소스 그룹은 하루 생계비 1~3달러인 지역 주민들을 고용해 최저 시급 1달러를 지급하고, 매출의 일정 비율을 의무 투자하는 원칙을 지켜왔다. 벤처펀드로부터 단 한 푼의 투자도 못 받고 창업한 사마소스는 2019년 연 수익 1,500만 달러의 업계 1위 기업으로 성장해 1,480만 달러의 펀딩을 받아냈다. 사마소스 직원들 사진. socialimpactventures.nl

자나는 창업 초기부터 ‘공정임금가이드(Fair Wage Guide)’를 두고 사마소스를 운영해왔다. 세계에는 하루 3달러 미만의 생계비로 살아가는 이들이 40억 명에 달하고, 그 중 14억 명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버틴다. 그런 이들을 고용한 사마소스의 임금 하한선은 시간당 1달러다. 업무 전문성과 직급에 따라 시간당 10달러까지 받는 이들도 있다. 2015년 에세이에서 그는 “하루 평균 2달러를 벌던 일가족 6,900명의 가계 소득이 3년 뒤인 2011년에는 4배로 불어났다”고 썼다. 동아프리카 및 아시아 직원 평균 연봉은 입사 전 800달러에서 입사 1년 뒤 3,300달러로 조사됐다.(2015년 기준) 직원들은 돈을 벌면서 일을 배우고, 승진하고, 더러는 같은 업종으로 독립하거나 밑천을 모아 창업도 한다. 내전과 소년병으로 악명 높던 우간다 북부 한 가난한 농촌의,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고아 소녀 줄리엣 아요트(Juliet Ayot)는 게티이미지 사진 태깅(tagging)을 해서 번 돈으로 새끼 돼지 두 마리를 샀고, 지금은 인부까지 둔 양돈장 사장이 됐다고, 자나는 자랑했다.

사마소스는 2019년 현재 영업과 기술, 데이터 품질 관리 등을 전담하는 본사 글로벌 스태프를 포함,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사까지 약 2,900여 명을 두고, 2018년 약 1,5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데이터 품질을 인정받으며 글로벌 기업들과 잇달아 계약을 체결, 명실공히 세계 최대 ‘AI 트레이닝 데이터 프로바이더’ 기업으로 성장한 사마소스는 지난 해 11월 ‘시리즈 A 투자 라운드’에서 1,480만 달러 펀딩까지 받아냈다. 당시는 CEO인 자나가 말기암 진단을 받은 사실까지 공개한 뒤였다.

앞서 자나는 2013년 ‘굿윌 재단’ 등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저소득 청년들을 위한 비영리 벤처 직업 학교 ‘사마 스쿨’을 설립, 10주 과정의 온라인 기반 취업 기술 교육 및 창업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근년에는 아칸소와 뉴욕으로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2015년에는 우간다 나일강변의 닐로티카(Nilotica)라는 특산 콩과식물에서 추출한 유기농 버터를 주성분으로, 공정무역 기반의 럭셔리 기초화장품 브랜드 ‘LXMI(락슈미)’를 설립해 세포라 등의 판매망을 통해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한다”는 기치의 락슈미는 우간다 외에 수리남, 케냐 등지에서 여성 일자리를 창출했고, 환경단체와 제휴해 아마존 우림 2,350㎢의 보존 프로젝트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세계경제포럼 청년지도자, 2012 테크 펠로(TechFellow), TED 펠로, 클럽 마드리드 리더십 어워드, 2014년 최연소 하인즈(Heinz) 어워드, 포춘 선정 ‘가장 전도유망한 기업인’ 등에 선정됐고, 수많은 잡지 등 매체의 표지에도 등장했다.

그는 “우리가 손도 못 댄 거대한 자원이, 세계 경제 네트워크에 편입되지 못한 채 피라미드의 맨 바닥에 깔려 있는 두뇌 인력(brain power)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 사실을 처음 깨달은 것도 10대 시절 가나에서였다. 그는 “매일 셔츠를 깨끗이 빨아 입고 학교에 오는(…) 그들은 극도로 동기화된(extremely motivated) 학생들”이었고 “다만 기회와 정보에 목말라 있는 이들이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이 이룬 시간ㆍ공간 혁명 덕에 세계 오지의 가난한 이들도 새로운 기회를 누릴 수 있게 됐다고,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가난도 극복할 수 있는 고난이라고 그는 2017년 책 (‘GIVE WORK: Reversing Poverty One Job at a Time’)에 썼다.

레일라 자나는 결혼 준비로 한창이던 2019년 초 육종암 진단을 받았고, 그 직후인 3월 결혼했다. 지난해 10월 항암치료를 받던 무렵의 그. 자나는 한 인터뷰에서 방송인 숀다 라임스가 했다는 말을 전하며 '여성은 누군가의 보조자여야 한다는 관습적 관념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성이 아닌) 빛나는 별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젊은 여성들에게 조언했다. lxmi.com

자나는 살사 댄서로 샌프란시스코 카니발에 참가한 이력이 있을 만큼 춤을 잘 췄고, 사업가가 아니었으면 해양생물학자가 되고 싶었을 정도로 해양 스포츠를 즐겼다. 2019년 병 때문에 발이 묶인 뒤로 그는 그림과 우쿨렐레를 배웠다. 지난 해 11월 SNS에 그는 “병을 얻은 뒤부터 인체의 생물학적 복잡성(complexity)과 사랑에 기반한 인간 관계의 신비롭고 경이로운 힘을 알게 됐다”고, “암만 없다면, 나는 지금 내 생애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썼다. 그는 지난해 대규모 펀딩을 추진하며 학교를 제외한 사마소스 계열사를 영리 기업으로 전환하고, 최대 지분을 별도로 설립한 비영리 유한 책임회사에 맡김으로써 ‘만일’에 대비했다. 그는 2017년 지인의 소개로 만난 한 글로벌 솔루션 회사(Anheuser-Busch InBev SA)의 부회장 태실로 페스테틱스(Tassilo Festetics)와 지난해 3월 결혼했다. 부부에겐 남편이 전처와 낳은 딸 하나와 강아지가 있었다.

자나는 “나는 사나운 매니저였다. 내가 혼신을 다하는 만큼 직원들도 그렇게 하기를 바랐고, 내 기대에 못 미치면 화를 터뜨리곤 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2016년 인터뷰 때는 “나의 가장 큰 실책들은 모두 조급증에서 비롯됐다.(…) 몰아붙이는 건 중요한 인력들을 소진시키는 짓이고, 사업에도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병에서만큼은 여전히 ‘악바리’였다. 자신의 모든 자원과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동원해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받고자 했고, 지난해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 직접 찾아가 골육종 관련 최신 정보를 모았다. ‘에피자임(Epizyme)’이라는 한 스타트업 기업이 개발한 미 식품의약국(FDA) 미승인 골육종 실험 약품(Tazemetostat)의 임상실험에도 그렇게 참여했다. 더 전에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결혼과 출산을 늦추면서 1만 달러를 들여 난자를 냉동해두기도 했다.

그가 한창 투병하던 지난해 7월, cnbc의 한 기자가 그 일을 꼬집었다. 자나가 벌이고 있는 투병의 양상이 그가 힘주어 표명해온 사업 원칙 및 이념에 어긋난다는 것, 같은 질병을 앓는 다른 이들과 달리 그가 차별적으로 지닌 기회와 자원을 특권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확실히 그는 ‘사마(평등)’의 원칙보다 자신의 목숨을 중시했다. 그는 기자에게 “내가 다른 이들보다 더 나은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건 여러 국면에서 무척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흔히 가장 힘든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들 하는 까닭은, 욕망과 타협의 유혹이 그만큼 거세기 때문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싸움이 끝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국면의 승패는 결과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통해 새로운 싸움, 새로운 승패로 이어진다. 자나는 자신(의 욕망)과의 싸움에서 패배했지만, 적어도 그 패배를,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지 않았다.

사마그룹의 새 CEO는 창업 초기부터 자나와 함께 해온 동지이자 친구인 COO 웬디 곤잘레스(Wendy Gonzalez)가 맡았다. 사마그룹은 설립자의 부고를 전하며, 새 체제에서도 “자나의 비전과 전략을 흔들림 없이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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