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위생 불평등

입력
2020.02.25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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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인근 쪽방촌에 지역 주민들에게 하루 1개의 마스크를 제공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김영훈 기자
20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인근 쪽방촌에 지역 주민들에게 하루 1개의 마스크를 제공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김영훈 기자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한다는 의미의 ‘위생(衛生ㆍhygiene)’ 개념은 구한말 개화파들이 소개했다. 유럽을 견문한 일본의 초대 내무성 위생국장 나가요 센사이(長與專齋ㆍ1838~1902)가 ‘장자(莊子)’에 나오는 단어를 차용해 개념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성순보’ ‘독립신문’ 같은 개화기 신문들이 쓰기 시작했다. 이 신문들은 병이 나지 않으려면 ‘몸과 집을 깨끗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개인ᆞ주택 위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논설들을 싣기 시작했다.

□ 식민지를 경영한 다른 제국처럼 일제는 일본인과 조선인을 ‘청결’과 ‘더러움’ , ‘문명’과 ‘미개’ 의 이분법으로 우열화했다.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조선인은 원래로 위생에 주의치 아니하는 습관을 기성(己成)하였다’(1910년), ‘조선인은 청소를 하지 않는 미개한 민족’ (1911년) 이라며 앞장서 위생담론을 퍼뜨렸다(김백영 ‘지배와 공간’ 재인용). 일제의 위생담론은 인종적 우열을 강조하며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활용된 셈이다.

□ 일제는 위생의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위생 대책은 차별적이었다. 치사율이 높은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는 당시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1920년 경성(서울)에서만 1,249명이 콜레라로 사망했다. 이전까지 우물물을 마시던 조선인들은 이후 수돗물을 선호하게 됐지만, 고가의 수돗물은 조선인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경성의 상수도 인프라는 청계천을 경계로 조선인 거주지인 북촌과 일본인이 많이 사는 남촌이 대비됐다. 1932년 관내 일본인은 98%가 수도급수를 받았지만 조선인은 32%만 수돗물을 이용할 수 있었다.

□ 지난달 말 국내 전파가 시작돼 급속히 확산 중인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방역체계의 사각지대가 드러나고 있다. 특히 감염자와 사망자 대다수가 나온 경북 청도군 청도대남병원 폐쇄병동, 경북 칠곡군 중증장애인시설 같은 밀집생활 시설은 감염병이 돌면 재난이 될 수 있는 곳임을 일깨워준다. 쪽방에 사는 영세민들 사정도 비슷하다. 이들은 개인위생의 기본 장비인 마스크나 손소독제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다고 한다. 빈곤한 사람일수록 건강이 좋지 않은 ‘건강 불평등’이 극복해야 할 과제인 것처럼, 고령ㆍ장애인ㆍ영세민 같은 취약계층이 전염병에 희생되지 않도록 ‘위생 불평등’ 해소도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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