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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신문지는 파키스탄 폐신문지 업계를 접수했다. 덕분에 한국어 신문은 타국 땅에서 험한 일을 도맡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기행 프로그램 촬영이 있어 파키스탄에 갔다. 나라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다름 아닌 신문지였다.

파키스탄에서 사용되는 신문지에는 한글이 쓰여 있었다. 당연히 구독해서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종이 그 자체를 이용하기 위함이다. 중고 차량이나 옷가지 등에도 한글은 널리 적혀 있었다. 한 번은 두메산골 이발사가 ‘전남농협향토봉사단’ 조끼를 입고 손님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었다. 언어의 차이로 그 문구를 설명해 주지 못해 안타까웠다. 이 중 신문지야말로 활자의 양이나 비율에서 압도적이다. 내가 본 파키스탄의 실용적 신문지는 모두 한국산이었다.

주 용도는 그들의 주식인 빵 포장이다. 사람들은 화덕에서 갓 나온 빵을 빳빳한 한국 신문지에 싸서 집에 들고 간다. 그 외 바닥에 테이블 대용으로 사용할 때, 튀김 기름을 흡수할 때, 도배용으로 벽에 바를 때, 신발 안에 구겨 넣어 모양을 잡을 종이가 필요할 때, 모두 한국산 신문이 사용된다. 덕분에 길가에 널린 폐휴지도 전부 한국어다. 사람들은 한국어로 포장된 빵을 먹고 한국어가 발라진 집에서 생활한다. 식당의 때묻은 벽에는 ‘중장비 운전 국비 교육’이라고 적혀 있고, 식당 종업원이 깔아준 종이에는 ‘회생 파산 소송 가압류’가 적혀 있다. 사람들은 이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모를 것임을 확신한다.

신문에 연재하는 사람으로 연유를 짐작해 본다. 한국에서 종이 신문은 멸종 위기다. 사람들은 빠르게 디지털 문화에 익숙해졌고, 종이 신문은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발행 부수는 아직 신문사의 격을 상징하는 의미로 남아 있다. 그래서 많은 신문사는 배포되지 않을 신문도 일단 발행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한국 신문지는 매우 질이 좋다. 버리기보단 그대로 수출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산 신문지는 비교우위를 점해 파키스탄 폐신문지 업계를 접수했다. 덕분에 한국어 신문은 타국 땅에서 험한 일을 도맡고 있다.

하필 영어도 중국어도 일본어도 스페인어도 아닌 한국어 신문이라. 이 신문에 관계된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한류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타국의 사람들이 자기 글로 빵을 포장하거나 벽에 붙여놓고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신문지는 실질적으로 문화적 영향을 줄 것인가? 가령 신문지를 보다가 한국어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독학으로 공부해 훗날 한국에서 일을 하게 된다거나, 빵 싸는 종이를 능숙하게 읽어 내는 영재가 등장한다던가. 사실 그런 일까지는 없을 것이다. 한국은 파키스탄 사람에게 방문부터 쉽지 않은 나라다. 또 누가 도배용 신문지를 읽으려고 한 언어를 배우겠는가.

그러나 파키스탄을 자주 방문했던 일행은 이런 말을 했다. 저 건물도 이전에는 없던 것이고, 교통 체증도 점차 생겨나고 있다고. 이 나라가 많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 보인다고. 결국은 이 나라도 조금씩은 더 나아질 것이다. 어쩌면 신문지 같은 것은 더 이상 수입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거쳐온 길이 있다. 사실 나는 어릴 때 영자신문으로 고구마를 싸먹은 기억은 없지만, 옛날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할 영자신문을 실생활에서 사용한 기억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상상해 보는 것이다. 지금의 파키스탄 학생들이 훗날 자리에 둘러앉아서 “맞아. 우리 때 빵 싸먹던 종이는 전부 한국어였잖아. 왜 하필 한국어였을까” 같은 대화를 나누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을. 그러니까 이 많은 사람들의 아릿한 추억 속에서 한국어는 엄연히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내 모국어는 옛 기억이라는 고유한 파장 안에서 어느 정도 지분을 간직하며 이들의 뇌리에 남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타지에서 궂은 일을 하는 모국어에게 애착이 들기 시작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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