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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공포는 무지에서 왔으나 지금의 공포는 정치적이고 이기적인 바탕에서 만들어진다. 사진은 전남 고흥군 소록도의 감금실. 최흥수 기자

‘소록도에 간다고?’ 근대건축 답사를 나보다 세 배 정도는 더 많이 다니는 아내의 다음 답사지를 듣고 내가 보인 반응이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1916년 처음 나환자 전문 병원이 생긴 이후로 지금까지도 외부와 격리된 지역이 많다 보니 당시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병원, 환자들이 머물던 병사, 학교, 감옥, 공원, 심지어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지어진 일본 신사까지도 있단다. 여전히 격리구역이 존재하나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는 곳도 있고 소록도 병원 100주년을 기념해서 지어진 박물관도 있다. 같이 갈 수 없어 아쉬웠던 나는 먼 기억 속에서 소록도를 꺼내보았다.

‘소록도’를 처음 인식했던 것은 만화와 영화를 통해서였다. 1982년 보물섬에 연재되었던 허영만 화백의 ‘태풍의 다이아몬드’가 그 시작이었다. 형제간의 대결 구도,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한 소년의 성장스토리 등등 드라마의 절대적 요소들이 듬뿍 들어 있어 푹 빠져서 보았던 만화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나병에 걸려 아들을 위해 스스로 소록도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었다. 결국 주인공도 나병에 걸리게 된다. 허영만 화백의 그림이 워낙 출중하였기에 병에 대한 공포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 나는 이 병이 유전이라고 생각하고 눈물까지 흘렸지만 나병은 유전병이 아니다. 이 경우는 작가가 만들어낸 대단히 불행한 경우에 속할 뿐이었다.

영화로는 ‘벤허’다. 나에겐 그 유명한 전차 경주 장면보다는 더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나병에 걸린 여동생과 어머니가 그곳에 있다가 완치되는 장면이 있었다. 이미 허영만의 만화로 다져진 엉뚱한 지식과 공포는 결국 나병의 치료는 신의 기적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으로 믿게 되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라도 있었다면 검색해서 정확한 정보를 알아낼 텐데, 그러지 못했던 탓에 막연한 공포감과 걱정으로 나병, 그리고 소록도를 인식하게 되었다.

나병에 대해 검색해 보니 많은 자료가 나온다. 나병은 나균에 의한 만성 전염성 피부병이며, 두려워할 만큼 전염성이 강하지도 않을뿐더러 유전병도 불치병도 아니다. 그러나 이 병은 과거 수천 년간 인간 사회에 영향을 끼쳤다. 치료법이 알려진 후 근대 시기 우리나라를 찾아온 선교사들은 나병 치료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여수, 순천 등지 선교사촌에는 지금도 한센인을 위한 시설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소록도에 병원을 세우며 환자들의 섬이 되었다. 환자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줌과 동시에 사회와 격리시킨 것이다.

소록도는 요양소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다. 무엇보다 환자들은 불확실한 불안과 공포에서 발생한 혐오와 편견에 맞서야 했다. 회복된 뒤에도 환자들의 정착촌은 일반 사회에 격리된 곳에 있었고, 질병이 낙인이 되어 사건사고가 생길 때마다 공격 대상이 되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질병이라 할 수 있으며, 과거 자행된 인권 유린의 역사들은 건물에, 흩어진 기록에,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질병의 공포가 만연한 요즘이다. 힘겹게 우한에서 돌아온 교민들을 격리 수용할 지역이 결정되었을 때, 그들이 의심환자가 아니었음에도 일부 주민들이 보여준 이기적인 광기를 기억한다. 가짜 뉴스가 만든 공포, 무지로 인한 혐오다. 과거의 공포는 무지에서 왔으나 지금의 공포는 정치적이고 이기적인 바탕에서 만들어진다. 소록도가 한동안 기피 대상으로 낙인찍혔던 것처럼 지금 일부 언론은 ‘코로나19’라는 정식명칭이 있는데도 고집스럽게 우한폐렴이라 부르기를 고집한다. 소록도처럼 장소에 대한 낙인이다. 이런 혐오와 낙인에 단호한 시민의식을 보여줄 때다. 질병의 공포는 제대로 알고 침착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때 사라진다.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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