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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축구 신(申)바람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최근 인조잔디구장으로 바뀐 자카르타 동부 클렌데르 경기장에서 한인과 현지 축구 동호회 팀이 경기를 하고 있다. 독자 제공

인도네시아는 축구를 못한다. 동남아시아에서 거의 꼴찌다. 2010년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 173위던 베트남이 10년 새 94위로 상승한 반면 인도네시아는 127위에서 173위로 주저앉았다. 1938년 제3회 프랑스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한 적이 있지만, ‘네덜란드령 동인도’라는 이름으로 출전했으니 온전한 자국의 자랑거리도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축구를 사랑한다. 프로축구 팀만 1부리그 18개를 비롯해 2부리그 24개, 3부리그 120개다.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 등 면면이 다양한 동호회는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최근 자카르타 동부 클렌데르 경기장이 인조잔디구장으로 거듭나자 동호회 60개가 득달같이 등록했다. 퇴근 후엔 시내에 몇 안 되는 축구장마다 직장인들로 넘쳐난다. 가난한 아이들도 유니폼 한 벌쯤은 가지고 있다. “축구 열기로만 따지면 나이지리아에 이어 인도네시아가 2위”(에반스ㆍ전 체육기자)라고 자부할 정도다.

자카르타 시내 한 축구장에서 직장인 동호회 회원들이 퇴근 후 축구 경기를 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축구 사랑은 성적 순이 아니다”고 외치는 현지 축구팬들에게 신태용(50) 감독은 ‘월드컵에서 독일을 격파한’ 영웅으로 회자된다. 잇따른 패배로 인기가 식은 국기(國技) 배드민턴을 축구가 대신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현지 분위기는 “어차피 밑바닥이니 져도 좋다. 우리 태용이 마음대로 하라” 쯤으로 정리할 만하다.

대학생 리오(21)씨는 “선수 선발 시 뇌물수수 관행을 없애주길 바란다”고 했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면 공무원 취직이 보장돼 부모들이 뒷돈을 주고 자식을 대표팀에 꽂아 넣는 고질을 지적한 것이다.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 밤 자카르타 마드야 경기장에서 자신이 발탁한 국가대표 선수들과의 첫 소집훈련을 마치고 현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연구원 리날디(25)씨는 “신 감독은 우리가 처음 뽑은 동아시아 출신 외국인 감독”이라며 “우선 숙적 말레이시아(FIFA 순위 154위)를 물리치고 장기적으로 팀을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달라”고 부탁했다. 독립 과정에서 영토 분쟁을 빚은 말레이시아는 우리로 치면 일본 같은 상대다.

회사원 리스키(25)씨는 “체력이나 성적 향상은 간단한 과제가 아니므로 최소 3년 이상 아무런 기대 없이 기다릴 테니 묵묵히 전진해달라”고 격려했다. 체육교사 수야지(24)씨는 “인도네시아축구협회(PSSI)가 신 감독을 믿고 팀을 바로잡을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에 응한 현지인 10여명은 한결같이 ‘신태용=기대+인내=희망’이라고 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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