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재회의 테크놀로지, 나연이와 블랙미러

입력
2020.02.19 04:30
31면
어찌 되었건 이제 재회의 테크놀로지는 실존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영화 속 사건, 판타지가 더 이상 아닙니다. 상용화의 시기가 관건일 뿐, 머지않아 누구든 구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입니다. 그런 시기가 오면 여러분은 사용하실 건가요? MBC ‘너를 만났다’ 영상 캡처
어찌 되었건 이제 재회의 테크놀로지는 실존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영화 속 사건, 판타지가 더 이상 아닙니다. 상용화의 시기가 관건일 뿐, 머지않아 누구든 구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입니다. 그런 시기가 오면 여러분은 사용하실 건가요? MBC ‘너를 만났다’ 영상 캡처

얼마 전, TV 앞에서 밤새 울었습니다. 가상현실(VR)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를 보았거든요. 아마 보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저랑 똑같은 모습이었을 겁니다. 1분짜리 예고편부터 너무 슬퍼 화제였던 이 작품, 본편이 방영되고서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완전히 점령해 버렸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4년 전 세상을 떠난 일곱 살배기 딸, 나연이를 그리워하는 엄마 장지성씨. 딸은 혈액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 단 하루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 하루 만에요. 그런 그녀를 위해 제작진이 VR 기술을 총동원합니다. 나연이의 생전 영상과 사진을 집대성해 아이를 복원, 가상현실 안경을 쓰고 재회하게 해 주는 프로젝트였지요.

저 역시 30년 전 동생을 잃은 지라, 5분에 한 번씩 울었습니다. 특히 장지성씨가 “잊어버리는 느낌이 두렵다”며 “남은 자녀들이 서른 될 때까지 나연이를 기억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할 때는 공감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서른 넘은 저는 이제 정말 동생의 얼굴을 잊었거든요. 사진 없이는 이름 외에 어떤 기억도 떠올리지를 못합니다.

이렇게 기억을 잃는 게 두려운 사람들을 위해 과학기술은 점점 여러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일본에서 유사한 일이 있었지요. 국민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사망 30주기를 추모하며 인공지능으로 부활시킨 것이지요.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를 만큼 사랑받던 가수라, 사망 30년이 지나도 가족과의 사별처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국민의 수가 너무 많았답니다. 그래서 생전 모든 영상과 음성데이터를 복원해 신곡 발표 콘서트를 방영한 것입니다. 나연이에게 적용된 기술과도 비슷하지요?

이런 기술의 상용화를 예견한 미국 드라마도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 ‘블랙미러’의 ‘돌아올게(Be Right Back)’라는 단편인데요. 위에서 말한 사례와 거의 같습니다. 차 사고로 죽은 남편의 모든 데이터를 모아 만든, 남편과 똑같이 대화할 수 있는 기술을 체험하는 아내의 이야기이지요. 다른 점이 있다면, 위 사례들과 달리 훈훈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기술에 중독되어 그 안에만 매몰되다가 일상이 붕괴된다는 모습을 그려냈지요. 결국 주인공은 사진과 유품을 모아 둔 추억의 다락방에 그 ‘남편의 데이터’를 넣어 둔 뒤에야 비로소 내일을 살아갑니다. 소중한 누군가가 떠났을 때, 우리는 ‘제발 다시 함께하기를’ 바라지만, 막상 영원한 재회는 축복이 아닐지도 모른단 말을 감독은 하고팠나 봅니다.

그러고 보면 비슷한 메시지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철도원,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 죽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다룬 명작 영화들은 대부분 ‘시한부’ 설정이 있습니다. 배우 김태희가 처음으로 엄마 역할을 맡아 화제가 된 모 드라마도 49일간 가족 곁에 머무르다 떠나는 내용이라더군요. 이렇게 작품 속 고인들은 꼭 며칠을 정해 두고 야속하게 떠나버립니다. 한때는 그것들이 신파를 위한 영화적 장치라고만 생각했습니다만, 요즈음은 이 과정을 통해 감독들이 말하고픈 것은 ‘재회’가 아닌 ‘건강하게 잊어 가기’였구나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건 이제 재회의 테크놀로지는 실존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영화 속 사건, 판타지가 더 이상 아닙니다. 상용화의 시기가 관건일 뿐, 머지않아 누구든 구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입니다. 그런 시기가 오면 여러분은 사용하실 건가요? 저는 글쎄요. NO 같습니다. 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거든요. 영원히 건강한 가족의 데이터, 몇 번이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고인. 그 기술 앞에서 과연 내가 건강한 이별을 하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지 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느 쪽을 향하고 있나요?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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