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의 시행착오?… ‘쇼트폼’이 능사가 아니다

입력
2020.02.18 04:30
수정
2020.02.18 17:1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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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금요일 금요일 밤에. tvn 방송 캡처
tvn 금요일 금요일 밤에. tvn 방송 캡처

“지금 방송국에서 일하는 분들은 다들 일정 부분 위기감을 갖고 있다고 본다. TV만 보던 시기는 이미 지났고,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이 인기를 끌면서 방송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10~15분 정도 보다가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방송으로 돌린다. 이런 시청자들의 요구에 맞춰 제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CJ ENM 소속이지만 이름 석 자가 브랜드가 된 ‘스타 PD’ 나영석이 던진 출사표였다. 지난달 본격 쇼트폼(짧은 형식) 예능 프로그램 ‘금요일 금요일 밤에’를 내놓으며 이런 뜻을 밝혔다.

유튜브 영상 여러 개를 이어 붙인 듯한 이 프로그램은 지난달 10일 첫 방송에서 2.89%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더니, 계속 제자리걸음을 걷다 14일 5회 만에 3%의 벽을 가까스로 넘었다. 그러나 나 PD가 당초 예상한 4%대에는 못 미치는 수치다.

방송사들이 쇼트폼 예능 프로그램을 하나 둘 선보이고 있지만 시청률은 아직 고전 중이다. 나 PD는 “70~80분짜리 방송을 던져놓고 알아서 끊어 보라는 건 무책임하지 않나 생각했다”고 했지만, 금요일 밤 예능 프로그램 경쟁에선 여전히 MBC ‘나 혼자 산다’, KBS2 ‘신상출시 편스토랑’ 같은 ‘롱폼’ 예능이 큰 차이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MBC가 선보인 쇼트폼 예능 ‘침착한 주말’ 시즌 1, 2 역시 1%대 시청률에 그쳤다.

쇼트폼 콘텐츠는 요즘 국내외 가릴 것 없이, 방송가는 물론 동영상 콘텐츠 플랫폼 업계까지 최대 화두 중 하나다.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M은 MBC, JTBC를 거친 오윤환 제작총괄이 이끄는 디지털콘텐츠 스튜디오를 통해 20분이 채 안 되는 분량의 쇼트폼 콘텐츠를 기획, 제작할 계획이다. 해외에선 쇼트폼 전문 동영상 플랫폼 ‘퀴비’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등 할리우드 A급 제작자ㆍ감독들을 끌어들였다. 4월부터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각종 콘텐츠를 쏟아내며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과 경쟁할 예정이다. 멕 휘트먼 퀴비 최고경영자(CEO)는 “광고주들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다음 혁명은 스마트폰에서 일어날 거라 믿고 있는 만큼 그들의 관심사도 모바일 기기에 맞게 제작된 콘텐츠에 있다”고 말했다.

tvn '금요일 금요일 밤에'. tvn 방송 캡처
tvn '금요일 금요일 밤에'. tvn 방송 캡처

문제는 쇼트폼 콘텐츠 성공의 방정식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다. 나영석 PD는 강호동과 손잡고 만든 tvN ‘라끼남’으로 4%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유튜브 최고 조회수 337만건을 기록하는 등 쇼트폼 콘텐츠의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동시에 ‘금요일 금요일 밤에’는 명백한 한계를 보여 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기본 방송을 짧게 줄여 내보내는 것으론 충분치 않다고 지적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금요일 금요일 밤에’의 경우 다루는 소재나 출연진, 진행 방식이 기존 예능 프로그램과 별반 다르지 않고, 쇼트폼이 주로 소비되는 SNS의 속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고 지적했다. 스튜디오 룰루랄라를 통해 유튜브 히트작 ‘와썹맨’, ‘워크맨’ 등을 제작한 방지현 JBTC 디지털제작서비스본부장도 “10분 분량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최소 4~6시간에서 최대 이틀 가량 촬영한다”며 “‘워크맨’ 같은 킬러 콘텐츠는 단순히 쇼트폼으로 만들어서가 아니라 상당한 강도와 밀도로 제작한 결과”라고 말했다. 쇼트폼이라 해서 상대적으로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밀도 면에서는 오히려 훨씬 더 촘촘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오히려 콘텐츠에 따라 쇼트폼 형태를 슬쩍 변형하기도 한다. 네이버의 웹드라마 제작사인 플레이리스트는 처음에는 10~15분 길이의 드라마를 만들다, 이제는 20~30분 분량으로 늘렸다. 박시은 플레이리스트 PR매니저는 “짧다, 길다 그 자체보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비슷한 드라마라 해도 짧게 가거나 길게 가거나 달리 할 수 있다”며 “처음부터 어떤 길이를 정해놓기보다 내용에 맞는 길이로 제작할 경우 시청자들로부터 더 좋은 반응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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