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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ㆍ주장 담은 칼럼에 고발은 과잉 대응
공적 사안 ‘표현의 자유’ 위축시켜선 안돼
총선 앞두고 오만보다 더 무서운 敵 없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민주당은 당에 비판적 칼럼을 기고한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를 이해찬 대표 명의로 검찰에 고발,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자당에 비판적인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이를 게재한 경향신문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고발 사실이 알려진 지 하루 만인 14일 백기를 들었다. 비록 중도에 고발을 취하하긴 했지만 공당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 정권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쓴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의도적인 정치 공세로 치부하는 여권의 편협과 오만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임 교수는 지난달 29일 기고한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에서 민주당이 촛불혁명을 주도한 국민의 기대를 배신했다고 주장하면서 “선거가 끝난 뒤에도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정당을 만들자.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고 주장했다. ‘촛불 정권’을 자임하는 민주당이 듣기에 불편한 얘기일 수 있지만, 허위사실을 담은 기사가 아니고 주의ㆍ주장을 담은 칼럼이었다. 당 차원에서 반박 논평을 내거나 반대 칼럼을 기고하면 될 일을 당 대표 명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은 과잉 대응이다.

서둘러 고발을 취하했지만 민주당은 이미 조롱거리가 돼 있다. SNS에는 ‘#민주당만_빼고’ 문구가 적힌 이미지 파일과 해시태그를 단 글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진지한 사과를 하기는커녕 고발 취하를 알리는 메시지에 임 교수가 안철수 전 의원의 싱크탱크 출신이라는 점을 밝히는 옹졸한 모습까지 보였다. 반대 진영이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미국 연방대법원은 1984년 정치적 항의의 표현으로 성조기를 불태운 행위를 처벌하는 건 위헌이라고 판결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오늘 우리의 판결은 우리 국기가 상징하고 있는 자유와 관용의 원칙을 선언하는 판결이다. 심지어 국기를 불태우는 방식으로 비판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용하는 우리의 확신은 우리 힘의 원천이며 징표다.” 공적 사안에 관한 표현의 자유는 위축 없이 행사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표현의 자유가 핵심 가치인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다른 목소리를 봉쇄하는 데 급급하니 이름 값이 아깝다.

최근 여권의 편협과 오만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둘러싼 공소장 비공개와 청와대 압수수색 거부, 의원 출신 장관이 3기 신도시 계획에 반대하는 주민에게 “동네 물 나빠졌네”라고 말한 것 등이 반정부 정서에 불을 지피고 있다. 역대 총선에서 대승을 장담하던 정당이 순식간에 무너진 경우는 한두 번이 아니다. 비판 칼럼에도 재갈을 물리려는 지금의 여당 태도라면 이번 총선도 예외가 아닐 수 있음을 여권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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