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훈 “큰 선수가 됐다고요? 키는 똑같은데…자신감이 커졌죠”

입력
2020.02.14 06: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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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KT 허훈이 13일 수원 올레빅토리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원=고영권 기자
프로농구 KT 허훈이 13일 수원 올레빅토리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원=고영권 기자

부산 KT의 3년차 가드 허훈(25ㆍ180㎝)은 이제 두말할 필요 없는 프로농구 최고 스타다. 올 시즌 올스타전 팬 투표 1위로 인기를 확인했고, 프로농구 한 경기 최다 타이인 3점슛 9개 연속 성공과 사상 첫 ‘20(득점)-20(어시스트)’ 달성 등으로 실력까지 입증했다. 개인 기록도 화려하다. 경기당 평균 득점은 15.4점으로 국내 선수 1위, 어시스트는 7.2개로 전체 1위다.

지금 기세를 유지한다면 현역 시절 ‘농구 대통령’으로 불린 아버지 허재(55) 전 대표팀 감독도 받아보지 못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영예를 안을 수 있다. 허재 전 감독은 정규리그가 아닌 1997~98시즌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했다. 허훈을 지도하는 서동철(52) KT 감독은 “큰 선수가 되고 있다”며 “우리 팀뿐만 아니라 리그의 흥행을 책임질 선수”라고 흐뭇해 했다.

13일 수원 KT올레빅토리움에서 만난 허훈은 사령탑의 칭찬에 “제가 큰 선수가 됐다고요”라고 반문하면서 손사래를 친 뒤 “키는 똑같은데, 자신감이 커진 것 같다”고 웃었다. 이어 “큰 심장은 아버지가 잘 물려준 덕분”이라며 “이제 ‘반짝’ 했기 때문에 얼마만큼 꾸준하게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최고 선수로 가는 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훈의 탁월한 농구 재간은 허재 전 감독을 연상시킨다. 다만 농구 선수로 180㎝의 작은 키는 아쉬움이 남았다. 실제 국제 대회에서 자신보다 10~20㎝ 큰 상대 선수를 막느라 한계를 노출하기도 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허재 감독이 지휘하는 대표팀에 형 허웅(27ㆍ185㎝)과 함께 승선했다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혈연 농구’ 논란에 휩싸였다.

허훈이 인터뷰 중 미소 짓고 있다. 수원=고영권 기자
허훈이 인터뷰 중 미소 짓고 있다. 수원=고영권 기자

하지만 허훈은 그대로 주저 앉지 않았다. 이듬해 실력으로 당당히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했다. 허훈은 부상자가 속출한 코트디부아르와 대회 순위결정전에서 3점슛 4개 포함 16점을 넣어 1994년 캐나다 대회 이후 25년 만에 한국 농구의 월드컵 1승을 이끌었다.

월드컵을 통해 허훈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특히 조별리그에서 맞붙었던 아르헨티나의 단신 가드 파쿤도 캄파쪼의 경기력이 눈에 들어왔다. 유럽 농구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 몸 담고 있는 캄파쪼는 키가 181㎝(공식 프로필)에 불과하지만 탄탄한 몸을 앞세워 상대를 밀어내고 화려한 농구를 한다. 패스 타이밍은 물론 슛 타이밍도 빠르다.

허훈은 “월드컵 대회 기간 도핑 테스트를 캄파쪼와 같이 받았는데, 키는 180㎝가 안 돼 보여도 몸은 정말 탄탄해 보였다”며 “작은 체구에서도 내뿜을 수 있는 센스가 인상 깊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자기 흥에 신나서 농구를 한다”며 “뭐든지 자신감 있고 과감하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평소 밝은 성격의 허훈도 코트에서는 언제나 활기차다. 그는 “몸은 카파쪼가 더 좋을진 몰라도 흥이나 자신감 있는 패스는 내가 더 낫지 않나 생각한다”며 미소 지었다. 서동철 감독 역시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미국이나 유럽 농구를 가면 대부분 단신 가드들이 경기를 쥐락펴락한다”며 “키는 공격 농구 트렌드에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힘을 실어줬다.

슛 자세를 취하고 있는 허훈. 수원=고영권 기자
슛 자세를 취하고 있는 허훈. 수원=고영권 기자

프로농구가 14일부터 휴식기에 들어가지만 허훈은 이날 FIBA 아시아컵 2021 예선을 위해 대표팀에 합류한다. 이번 대표팀은 리빌딩을 기조로 내세워 12인 엔트리 중 라건아(KCC)를 제외한 11명이 1990년대생이다. 월드컵 당시 최연소였던 허훈은 이번 대표팀에서 ‘막내 딱지’를 뗐다. 대표팀 내 입지도 후보에서 주전급으로 분류된다. 허훈은 “대표팀이 젊어져 분위기는 정말 밝을 것”이라며 “정말 잘하는 선수들이 모이는 대표팀이기 때문에 주전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동료들과 조화를 이루는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다짐했다. 대표팀은 오는 20일 인도네시아 원정에 나선 다음 23일 태국과 홈 경기를 치른다.

수원=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이주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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