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5개월 넘게 진행된 호주 산불 속에서도 살아남은 울레미 소나무 군락이 잿더미 속에서도 푸르다. 쥐라기 때부터 있었던 가장 오랜 침엽수인 울레미 소나무를 구하기 위해 호주 소방관들은 군락 일대에 연소 지연 물질 등을 뿌렸다. 뉴사우스웨일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시작된 산불로 호주는 5개월째 불타고 있다. 호주 정부에 따르면 남한 면적보다 넓은 1,070만헥타르가 잿더미로 변했다. 10만명이 화재를 피해 피난길에 올랐다. 재산 피해는 집계조차 어렵다. 전문가들은 전대미문의 산불이 발생한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한다. 지구 온난화로 서부 인도양의 수온이 높아졌고, 시드니 서부 낮 최고 기온은 48.9도까지 육박했던 건 대형 산불의 전조로 볼 수 있다는 것.

호주뿐이랴. 기후변화로 지구촌 곳곳은 몸살을 앓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 지진과 해일, 빙하 붕괴로 인한 해수면 상승 등은 인간이 살아갈 터전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구를 되살리지 못한다면 인류가 대멸종에 직면할거라는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기후변화가 몰고 올 대재앙이 두렵기만 하다.

‘환경을 해치는 25가지 미신’은 다른 이야기를 건넨다. 기후변화는 ‘공포’가 아니라 ‘미신’이라는 도발적 주장을 내놨다. “기후변화는 사기”라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기후변화 회의론자’의 뻔한 공격 아닐까.

하지만 저자는 정반대 인물이다. 대니얼 B 보트킨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는 세계적 환경과학자다. 지구온난화라는 말 조차 가물가물하고,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라는 개념조차 없던 1960년대부터 기후변화를 목소리 높여 경고해왔다. 물 만난 고기가 된 셈인데, 왜 이제 와서 기후변화를 미신이라 할까.

산불로 잿더미가 된 호주 캥거루섬의 케이프 보르다 부근 숲에 부상을 당한 코알라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케이프 보르다 =EPA 연합뉴스

저자는 기후변화, 그리고 기후변화의 위험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기후변화가 과학의 영역이 아닌, 이데올로기나 신화처럼 다뤄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믿음이 성역화되면서 합리적 검증이나 반박은 설 자리를 잃었다는 지적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는 유세 과정에서 ‘과학자들의 97%가 화석 연료 사용이 20세기 후반 지구 온난화 상승의 주범이었다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표본도 질문도 불분명한, 엉터리 여론조사를 인용한 것이다. 저자는 “그 조사에서 도출할 결론은 과학적 연구가 아니었다는 것 뿐”이라며 “다수가 합의하고 지지한다고 곧 진실이 되는 건 아니다” 고 일갈했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환경 문제에 대한 일종의 ‘팩트체크’ 보고서다. 저자는 마땅히 그럴 것이라, 또 그래야 한다고 믿어왔던 과학적 진실이 얼마나 미신에 가까운지, 25가지의 질문을 던지며 따져 나간다.

‘자연의 균형은 모든 생명에게 유일한 최선의 조건이다.’ ‘인간의 개입만 없다면 지구의 기후는 안정적일 것이다.’ ‘기후변화가 수많은 멸종을 야기할 것이다.’ ‘멸종은 부자연스럽고 나쁜 것이다.’

다 맞는 얘기 아니냐며 고개를 연신 끄덕일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 잘못된 믿음이다.

인간에겐 환경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자연재해는 ‘인간 탓’이며, 인간은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가꿔나가야 한다는. 자연의 균형과 안정성을 그토록 강조한다. 미안하지만 이 또한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자연은 뒤죽박죽 얽히고설킨 역동적 세계다. 태풍, 해일, 산불, 지진, 산사태, 화산 폭발, 유행병 등 자연적 요인으로 생태계는 수없이 파괴되고, 교란된다. 그 같은 대혼돈 속에서 생물은 진화하고, 생물다양성도 늘어난다. 산불이 없다면 숲은 늙은 나무만 가득한 곳이 된다. 그러면 어린 나무를 좋아하는 곤충이나 조류는 서식지를 잃는다. 자연의 급변은 인간에게만 ‘재난’일 뿐, 자연에는 ‘발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자연의 균형을 바라는 건 인간이 문명을 유지하려 들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과도한 공포는 금물이라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환경보호론자 등이 내놓는 섬뜩한 경고를 듣다 보면, 지금 지구의 온도가 가장 높다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10~13세기 중세 온난기에 지구는 지금보다 더 뜨거웠고, 15~17세기 소빙하기 때는 지금보다 더 추웠다.

인간이 개입하든 안 하든, 기후는 변한다. 저자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든다고 해도, 지구의 기온은 계속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기후변화로 수많은 생물종이 멸종할 거란 섬뜩한 경고도 과장됐다는 지적이다. 멸종은 오히려 외래종의 침입과 서식지 파괴가 발생했을 때 더 많이 일어난다.

환경을 해치는 25가지 미신
대니얼 B.보트킨 지음 박경선 옮김
개마고원 발행ㆍ464쪽ㆍ3만원

그러면 이제 마음 푹 놓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걸까. 기후변화를 막는답시고 벌여왔던 온갖 일들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는 얘기일까. 저자는 기후변화에만 집착하는 게 문제라 말한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노력만큼이나, 다른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에너지, 서식지 파괴, 침입종, 멸종위기종, 숲, 어장, 담수, 독성 오염물질 등 지금 당장 피해를 발생하고 있는 환경 문제들이다.

“인간이 기후변화 하나만 해결해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건 정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착각이다. 그런 미신이 어쩌면 지구를 더 위험에 처하게 할지 모른다.” 우리가 지키려는 건 환경일까, 인간일까. 이 책이 궁극적으로 던지려는 질문 같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