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국민 안전 두고 하지 말아야 할 것

입력
2020.02.07 18:00
수정
2020.02.07 18:2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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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정서 자극, 자찬 난무하는 정치권

“외교보다 안전” 메시지 못 주는 정부

국민 안전은 정치 도구ㆍ협상 대상 안 돼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의 확산 방지를 위해 후베이성 방문 및 체류한 모든 외국인에 대한 입국을 제한한 다음 날인 5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중국발 항공기 탑승객들이 전용 입국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의 확산 방지를 위해 후베이성 방문 및 체류한 모든 외국인에 대한 입국을 제한한 다음 날인 5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중국발 항공기 탑승객들이 전용 입국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손석희 JTBC 사장의 두고두고 회자되는 인터뷰가 있다. 2001년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생방송에서 진행자였던 손 사장은 프랑스 여배우이자 동물애호가 브리지트 바르도와 개고기 논쟁을 벌였다.

손= 인도에서는 소를 먹지 않는다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소를 먹는 것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바르도= 소는 먹기 위한 동물이지만, 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문화적인 나라라면 어떠한 나라에서도 개를 먹지 않습니다.

손= 한국에서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르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단 한 사람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해도…

손= 제가 아는 프랑스인은 한국에 와서 개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프랑스 사람 대다수가 개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과장해서 얘기해도 되는 겁니까.

분을 참지 못한 바르도는 생방송 도중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손 사장은 통쾌한 사이다 발언으로 맺음을 했다. “한국인이면 몰라도 프랑스인이라면 결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강변을 통해서 그가 동물애호가라기보다 차라리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스웨덴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은 ‘팩트풀니스(Factfulness)’에서 일반화 본능을 사실 왜곡의 주된 유형으로 꼽는다. 이 본능에 맞서려면 자신의 범주화에 오류가 없는지 끊임없이 자문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진원인 중국인들을 한 묶음으로 범주화한다. 그리고 바르도가 그랬듯, 박쥐고기 등 야만적인 식문화를 혐오의 숙주로 삼는다.

정작 유럽인들이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을 범주화해 기피한다는 뉴스에는 공분한다. 그들이 중국인과 아시아인을 동일시하는 건, 3만명 남짓의 확진자로 14억명 중국인 모두를 바이러스 보유자 취급하는 우리의 인식과 별반 다를 것 없음에도.

이런 일반화 오류를 부추기는 건 표심에 눈 먼 보수야당이다. 전원책 변호사는 한 방송에서 ‘우한 폐렴’이라는 용어를 자유한국당이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고 하면 국민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궤변을 편다. 명색이 제1 야당의 대표라는 사람은 중국에 마스크를 지원한 걸 두고 국민 분노를 자극한다.

여권도 ‘방역 정치’를 하긴 마찬가지다. 원내대표는 “바이러스 전쟁에서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고, 서울시장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잘 대응하고 있다”고 말한다. 설령 맞는 얘기라 쳐도, 확진자들이 하루에도 너덧명씩 늘고 있는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다.

정부가 국민 안전을 외교 테이블 위에 놓고 있다는 흔적을 노출시키는 것도 아쉽다. 후베이성 방문 이력 외국인 입국 금지 조치는 “국제법상 어렵다”는 몇 차례 부인 뒤에야 취해졌고, 중국 여행 철수 권고, 관광 목적 중국 방문 금지는 발표 뒤 몇 시간 만에 ‘검토’로 물러섰다.

신종 코로나는 사드(THAADㆍ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나 위안부 문제와는 결이 다르다. 국민 생명이 걸린 문제다. 1명의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수백 명의 접촉자를 찾아내 관리해야 하고, 그럼에도 구멍은 생긴다. 치사율은 낮다지만, 무증상 감염자까지 전파를 할 수 있다니 기존 바이러스와 차원이 다른 것 또한 사실이다. 미적대다 뒷문이 활짝 열리기라도 하는 날엔 아무리 뛰어난 방역망을 갖춘 나라라도 지역사회 전파를 피하기 어렵다.

외교가 그리 간단한 문제냐고? 경제 피해는 어떻게 감당하냐고? 물밑에서야 어찌하든, 적어도 국민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확실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줘야 한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한중 관계 개선에 아무리 중요한들, 시진핑 방한을 위해 바이러스에 더 많이 노출돼야 한다고 동의를 구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여당이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에 동참한 건, 그것이 맞든 틀리든 국민 생명 위협 요인은 단 0.00001%라도 허투루 흘려버려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 아니었던가. 신종 코로나보다 더 두려운 건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이 정치의 도구, 협상의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일지 모른다.

이영태 디지털콘텐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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