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본다, 과학] ‘미래 소년 코난’이 말하지 않은 진실

입력
2020.02.07 04:30
21면

※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1>김명진 ‘할리우드 사이언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처음 감독한 TV 만화 연속극 ‘미래소년 코난’.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처음 감독한 TV 만화 연속극 ‘미래소년 코난’.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직 ‘20세기 소년’이었을 때, 가장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은 단연코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 소년 코난’이다. “푸른 하늘 저 멀리~”로 시작하는 주제가와 코난, 라나, 포비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곳이 뭉클하다. 그래서 였을까. 10년 전쯤 펴낸 책의 제목에 호기롭게 ‘코난의 시대’라는 말을 만들어서 집어넣기도 했었다.

코난을 ‘명탐정’이 아닌 ‘미래 소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도 기억할 것이다. 끔찍한 전쟁으로 인류의 대부분이 죽고 지구도 격변을 겪고 나서,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은 ‘인더스트리아’와 ‘하이하버’라는 두 개의 섬으로 나뉘어 지낸다. 인더스트리아의 독재자는 다시 한 번 세계 정복을 꿈꾸고 코난은 친구와 함께 그에 맞선다.

사실 ‘미래 소년 코난’은 미야자키의 순수한 창작물이 아니다. 미국 작가 알렉산더 케이의 SF ‘거대한 해일’에서 인더스트리아와 하이하버의 대립 같은 주요 설정을 가져왔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원작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인더스트리아를 ‘인류 몰락을 낳은’ 낡은 기계 문명의 유산으로, 하이하버를 새로운 생태 문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하이하버를 지지하는 미야자키의 시각은 1960년대 루이스 멈포드 같은 지식인의 현대 과학기술 비평과도 맞닿아 있다. 멈포드는 ‘독재적 기술’과 ‘민주적 기술’을 구분하고, 국가 권력과 거대 자본이 좌지우지하는 전자가 득세하는 모습을 경고했다. 그가 독재적 기술의 예로 든 것이 바로 핵폭탄, 우주 로켓, (숙련 노동자를 일터에서 몰아내는) 컴퓨터 등이다.

할리우드 사이언스

김명진 지음

사이언스북스 발행ㆍ238쪽ㆍ1만5,000원

그렇다면, 21세기에도 멈포드나 미야자키의 시각이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 김명진은 ‘할리우드 사이언스’(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미래 소년 코난’이 취했던 현대의 기술을 모두 ‘악’으로 간주하고 전통적인 기술을 ‘선’으로 이상화시키는 이분법의 한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왜냐하면, 이런 식의 이분법은 “한편으로 현대 기술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고양”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술의 민주적, 생태적 ‘재구성’의 모색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미래 소년 코난’에서 인류를 멸망시킨 ‘나쁜 기술’로 묘사되는 태양 에너지는 인류의 선택과 실천에 따라서 기후 변화를 막고 화석 연료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대안일 수도 있다.

현대 과학기술을 옹호하는 측이나 비판하는 측이나 은연중에 선악의 이분법을 따르고 있다는 김명진의 비판은 의미심장하다. 로봇, 인공지능, 빅데이터, 생명공학 하면 곧바로 ‘4차 산업 혁명’의 장밋빛 미래를 연상하는 사람과 그런 과학기술을 떠올릴 때마다 몸서리치며 파국적 결과를 예상하는 사람은 사실 이런 이분법을 공유한다.

김명진의 ‘할리우드 사이언스’는 한국에서 본격적인 ‘과학 비평’의 가능성을 모색한 책이다. 비교적 친숙한 할리우드 SF 영화부터 생소한 다큐멘터리까지 30편의 영화를 소재로 현대 과학기술의 이모저모를 짚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영화로 보는 현대 과학 기술’ 같은 과목의 교재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쓰인 책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2013년에 세상에 나오고 나서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책이 흥미진진했다면 곧바로 ‘20세기 기술의 문화사’(궁리 펴냄), ‘세상을 바꾼 기술, 기술을 만든 사회’(궁리 펴냄), ‘야누스의 과학’(사계절 펴냄) 같은 책도 펼쳐보면 좋겠다. 다소 건조한 제목의 책들은 로봇, 인공지능, 생명공학, 핵발전소 같은 과학기술이 어떻게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왔는지 흥미진진하게 추적하며, 우리의 통념을 깬다.

이 참에 국내 최고의 ‘과학기술 비평가’ 김명진의 존재도 알리고 싶다. 단언컨대, 국내에서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고민하는 학자라면 그의 저술이나 번역에 빚지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지금 당장 ‘할리우드 사이언스’를 구해서 아무 장이나 펼쳐서 읽는다면,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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