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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16> 인천 교동도 대룡시장 골목
관광객들이 지난달 31일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 골목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주말을 앞둔 지난달 31일 오후 경기 김포와 인천 강화도를 잇는 강화대교를 건너 섬 북서쪽으로 향했다. 서울 광화문부터 이어지는 48번 국도 끝자락에 다다르자 강화도 본섬과 교동도를 연결하는 교동대교 진입로가 나타났다. 진입로는 ‘주민’과 ‘방문객’ 두 갈래로 갈렸다.

진입로 바닥에 그려진 방문객용 분홍색 주행유도선(주민은 녹색)을 따라가니 해병대 검문소가 막아 섰다. 소총으로 무장한 해병대원은 방문 목적을 묻고는 ‘임시출입 및 단기체류 신청서’를 건넸다. 신청서에 이름과 휴대폰 번호, 차량 번호를 적어 내자 해병대 제2사단장 명의의 차량출입증이 나왔다.

“필승” 구호를 붙여 거수경례를 하는 해병대원을 뒤로 하고 검문소를 하나 더 지나 교동대교 위에 오르니 교동도가 눈앞에 자세히 들어왔다. 서울에서 가깝고 국내에서 14번째로 큰 섬(면적 47㎢)임에도 연륙교가 놓이기 전까지 교동도는 그저 ‘먼 섬’이었다. 휴전선이 섬을 휘돌아가고 섬 전체가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북쪽에 있어 엄격한 통제를 받는 탓이다. 남과 북이 마주보는 중립수역에 자리한 교동도는 황해도 연안ㆍ배천군과 불과 3㎞ 떨어져 있다. 개풍군도 8㎞ 거리다. 맨 눈으로도 바다 건너 북한땅이 보인다. 전망대 망원경으로는 북한 주민도 볼 수 있다.

지난달 31일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 골목의 상인들.

2014년 7월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와 교동면 봉소리를 잇는 길이 3.44㎞ 교동대교가 개통하기 전까지 교동도는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배로 15분이면 교동도 월선포 선착장에 닿았지만 조수간만 차가 클 때는 돌아가느라 1시간도 걸렸다. 다리가 생긴 뒤로는 서울에서 1시간이면 닿는 곳이 됐다. 교동개교 개통 후로도 한동안 교동도는 해가 진 후부터 뜨기 전까지 접근할 수 없는 섬이었다. 최근에서야 다리 통행 제한 시간이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로 줄었다.

교동대교를 건너 5분정도 달리니 드넓은 저수지가 나타났다. 88만5,000㎡ 크기 고구저수지다. 저수지를 지나니 ‘평화의 섬 교동 어서오시겨(어서오세요)’라는 글자 조형물이 있는 회전교차로와 함께 대룡시장 입구가 보였다.

대룡시장은 한국전쟁 당시 교동도에 피란민이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전쟁이 터지면서 황해도 사람들이 교동도로 피난을 왔다가 한강하구가 분단선이 되면서 못 돌아가고 실향민이 됐는데, 땅이 없던 이들이 원래 밭이었던 곳을 주인에게 달에 얼마씩 주고 빌려 노점상을 운영한 게 시초라고 전해진다. 피란민들이 고향인 연백군(현재 연안ㆍ배천군)에 있던 연백시장을 떠올려 대룡시장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지난달 31일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 골목.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교동도 인구는 광복 당시 8,600명 수준이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이 몰려 1965년에는 1만2,000명에 이르렀다. 1970년대 점차 감소해 현재는 지난달 기준 2,941명에 불과하지만 한때 사람들로 붐비는 섬이었다.

교동도 중심지에 있는 대룡시장도 비슷한 길을 걸었는데, KBS 예능 1박2일 등 TV 프로그램과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조금씩 찾는 사람이 늘었다. 교동대교 개통 이후엔 관광객이 부쩍 늘어났다. 최근 레트로(복고주의)가 유행을 타면서 1980년대 모습을 간직한 대룡시장은 ‘핫’한 곳이 됐다.

대룡시장은 교동대교 개통 뒤에도 한동안 옛모습 그대로를 유지했다. 양복점 겸 세탁소, 약방(약국), 이발소, 다방, 고깃집 등을 실향민이나 실향민 2, 3세들이 꾸려오다 최근엔 수년간 관광객이 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이날 찾은 대룡시장내 ‘+’ 모양의 좁은 골목길에는 기존 상인들과 최근에 유입된 상인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었다. MBC 강변가요제 대상 출신 가수인 이후종(53)씨도 최근 유입된 상인 가운데 한 명이다.

지난해 5월 대룡시장이 들어왔다는 이씨는 “교동도로 여행을 왔다가 정착을 하게 됐다”며 “(뻥튀기) 장사는 이곳에서 처음 하는데 주말에는 손님이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이 지난달 31일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 골목을 걷고 있다.

대룡시장은 레트로 열풍에 발맞춰 시장 곳곳에 1960~70년대 풍경을 녹아냈다. 빈 건물에 ‘엄마의 분식 솜씨, 즐겨먹는 우리 가족’ ‘너도 나도 쥐잡아 100만석의 증산 보자’ 등 옛 표어와 그림을 그려 넣었고 윤보선, 박정희부터 노무현까지 전직 대통령의 선거 포스터도 한쪽에 붙여놨다. 큰 골목과 연결되는 작은 골목에는 옛모습을 벽화로 그려 넣기도 했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 페인트로 쓴 복고풍 간판을 달거나 슬레이트 지붕에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과일, 건어물, 생선 등 판매하는 품목을 적어둔 가게들도 들어섰다. 최근 문을 연 가게 사이사이는 역사가 50~60년에 이르는 교동다방, 연안정육점식당, 대성양복점ㆍ세탁소 등이 채우고 있었다. 또 옛날 교복 대여 가게도 들어섰다.

갓 태어난 강아지를 닮은 모양이라고 해서 강아지떡이라고 불리는 이북식 인절미와 황해도 전통 강정, 강화도를 대표하는 순무김치를 파는 옛 가게 옆에 대룡시장 명물인 제비를 본뜬 제비빵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파는 커피숍이 들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인천 강화군 교동면 위치도. 그래픽=강준구 기자

대룡시장 옆에는 관광안내소 역할을 하는 ‘교동제비집’도 들어섰다. 민관이 함께 추진하는 ‘평화와 통일의 섬 교동도’ 프로젝트의 하나로 추진된 교동제비집은 2017년 3월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가상현실(VR) 기술을 통해 교동도 곳곳을 찾아 볼 수 있고 황해도 지역 모습도 대형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다. 교동도와 연백평야를 연결하는 가상의 다리나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교동신문 만들기도 체험할 수 있다. 자전거를 빌려 타거나 커피도 마실 수 있다.

반면 대룡시장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장사하던 건강원, 식당 등은 오래전에 문을 닫아 먼지가 쌓인 채 옛 모습 그대로 멈춰 있었다.

달걀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로 유명한 교동다방을 16, 17년전 넘겨 받아 현재도 운영하고 있는 전남수(62)씨는 “예전에는 시장에 다방 몇 곳이 다였는데, 지금은 찻집이 10개가 넘는다”며 “손님이 조금씩 줄고 있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관광객들이 지난달 31일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 골목을 걷고 있다.

주말에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활기를 띠지만 그만큼의 그림자도 조금씩 드리우고 있다. 대룡시장 대부분 가게는 과거 연(年)세를 냈는데 찾는 사람이 늘면서 지금은 월(月)세를 내는 곳이 생겨났다.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 현상) 우려는 아직 먼 얘기지만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기존 상인들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1953년 문을 정육점 겸 식당 3대 사장인 최성호(56) 대룡시장 상인회장은 “예전에는 연세를 받았는데, 지금은 월세를 받아 기존 (원)주민들이 어려워졌다”며 “상인회에서 주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발생한 다른 전통시장처럼 서류상의 땅, 건물, 도로가 실제와 일치하지 않고 땅과 건물 주인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도 대룡시장 발전을 해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상인회 측은 “건물이 다른 사람 토지를 침범하거나 주인이 돌아가신 땅, 건물도 있다”며 “영업허가증 없이 수십년간 장사해온 곳도 있는데 시장 양성화는 해묵은 숙제”라고 말했다.

관할 자치단체인 강화군도 지난달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강화군에 따르면 150여개 필지로 구성된 대룡시장 일대에는 건축물대장상의 건축물만 120여개에 이른다. 무허가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TF를 총괄하는 강화군 기획예산과 이철호 미래전략팀장은 “6ㆍ25전쟁 이후 무분별하게 건축물이 지어지면서 지적선상의 도로와 현실 도로가 맞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어 정부 사업을 추진 못하는 상황”이라며 “개인재산권이 걸려 있어 풀거나 조정하기가 어려운데, 전체적으로 현황을 측량해 양성화하기 위한 작업에 앞서 땅과 건물 소유주로부터 동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 골목.

기존 상인과 새로 유입된 상인들이 각각 느끼는 소외감과 배타적인 지역감정도 해소해야 할 과제다. 대룡시장상인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유입이 늘어 현재 전체 상인의 20% 가량 외지인이 차지하고 있다. 비중은 적지만 이들이 대룡시장 매출의 60% 정도를 가져가고 있다.

최 회장은 “인구가 유입되고 많은 돈을 벌면서 장사를 전문적으로 해오지 않은 기존 상인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며 “다만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효과가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대룡시장은 60, 70년의 긴 역사만큼이나 강인함이 있고 상인들간 끈끈함도 있다”며 “현재 시장이 70%가량 채워졌는데, 연산군 유배지, 옛 우시장터 등까지 시장을 확장하고 다양성도 추구하면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교동도=글ㆍ사진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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