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럭비 잡겠다”... 기대하세요 ‘애국하는 완용이’

입력
2020.02.04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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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도쿄 우리가 간다] <8> 남자럭비 국가대표팀 주장 박완용 

한국 남자 럭비 대표팀이 지난달 17일 진천선수촌 내 럭비연습장에서 주장 박완용(가운데)을 중심으로 V를 그리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진천=고영권 기자
한국 남자 럭비 대표팀이 지난달 17일 진천선수촌 내 럭비연습장에서 주장 박완용(가운데)을 중심으로 V를 그리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진천=고영권 기자

남자 럭비대표팀 주장 박완용(36ㆍ한국전력)은 2020 도쿄올림픽의 해 첫 소집 날이던 지난달 13일, 충북 진천선수촌으로 향하며 동갑내기 아내에게 거창한 약속을 던졌다. “도쿄올림픽 금메달 걸어줄게!” 아내는 씩 웃으며 집을 나서는 남편에게 짧은 당부를 남겼다. “다치지나 마.”

박완용이 허무맹랑해 보이는 약속을 내건 데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기적처럼 따낸 도쿄올림픽 본선행 기회를 살려 메달까지 목에 걸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또 하나는 결혼기념일이던 이날 아내와 함께하지 못한 채 선수촌에 입소하게 된 데 따른 미안함이었다.

진천선수촌 럭비훈련장에서 만난 박완용은 이날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금메달 약속을 두고 “진심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선수단 모두 도쿄올림픽에서 ‘깜짝 메달’을 꿈꾸며 매일 혹독한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며 “오랜 시간 그늘에 있던 한국 럭비의 저력을 올림픽 무대에서 펼치고 싶다”고 했다.

박완용은 “선수들이 올림픽 본선에서 가장 맞붙고 싶어하는 상대는 일본”이라고 했다. 그는 “객관적인 전력상 일본이 한 수 위지만, 경기장을 가득 메울 일본 관중들 앞에서 꼭 태극기를 꽂고 싶다”며 “이름 탓에 어릴 때부터 ‘매국노(이완용)’란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일본 땅에서 애국 한 번 제대로 하는 ‘완용이’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한국 남자 럭비 대표팀이 지난달 17일 진천선수촌 내 럭비연습장에서 어깨동무로 원을 그리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진천=고영권 기자
한국 남자 럭비 대표팀이 지난달 17일 진천선수촌 내 럭비연습장에서 어깨동무로 원을 그리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진천=고영권 기자

-지난해 11월 극적으로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뒤 관심이 늘었다. 그간의 무관심이 섭섭하진 않나.

“그런 건 없다. 이런 기회에 관심을 많이 가져줘 저희로선 감사하고, 선수들도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사실 한국엔 아직 럭비와 미식축구를 같은 스포츠라고 여기는 분들도 많다. 럭비는 트라이, 미식축구는 터치다운으로 득점하고, 우리(럭비선수들)는 경기 때 헬멧도 안 쓴다. 앞쪽으로 패스할 수도 없다.”

-올해 나이가 만 36세다.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팀 전력이 우리보다 앞설 테지만, 우리 선수들도 기량과 정신력에서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7인제 럭비 훈련이 정말 힘들긴 한데, 훈련 끝나면 서로 가족처럼 다독인다. 우리 종목만 힘든 게 아니다. 이렇게 땀 흘릴 수 있다는 걸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다.”

-도쿄에서 꼭 꺾고 싶은 상대는.

“일본한테는 가위바위보도 지지 말라고 하지 않나. 축구든 야구든 일본과 붙으면 전쟁인데, 우리도 국가대표인만큼 마음가짐은 마찬가지다. 특히 일본 땅에서 열리는 경기라 승부욕이 더 크다. 일본에 럭비 붐이 일었다고 하는데, 찬 물 한 번 끼얹고 싶다. 가능한 초반에 붙어 꺾고 싶다.”

-일본의 세계랭킹은 8위, 한국은 30위(1월 기준)로 전력 차가 상당히 크다.

“일본은 귀화한 외국인 선수들이 많은 데다, 이들이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왔다. 우리보다는 한 수 위라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우리도 만만치 않다. 아시아지역 예선을 치르면서 조직력이나 공격력에서 보완을 많이 했고, ‘원 팀(One Team)’으로 거듭났다. 찰리 로우(남아공) 기술고문이 7인제 럭비에서의 역할 세분화와 효율적인 경기 운영을 잘 가르쳐 줘 전력도 높아졌다.”

한국 남자 럭비 대표팀 주장 박완용이 지난달 17일 진천선수촌 내 럭비연습장에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진천=고영권 기자
한국 남자 럭비 대표팀 주장 박완용이 지난달 17일 진천선수촌 내 럭비연습장에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진천=고영권 기자

-목표로 한 메달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나.

“올림픽 첫 출전이라 부담은 크지만, 도전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어떤 꿈이든 꿔 볼 수 있는 것 같다. 올림픽이 열리는 7월까지 잘 준비한다면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럭비장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꿈을 꾸고 있다.”

-7인제 럭비는 체력소모가 크다는데.

“7인제 럭비를 하려면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전반 7분과 후반 7분, 여기에 하프타임 1분까지 총 15분짜리 경기지만, 7명이 15인제와 같은 크기 구장을 뛰어야 하는 만큼 체력소모가 상당히 크다. 한 경기에 한 사람당 3~5㎞를 전력질주 하는데, 하루 최대 3경기까지 치러질 경우 13~15km까지 뛴다. 전ㆍ후반 40분씩 뛰는 15인제보다 체력소모가 더 많다.”

-‘원 팀’이란 걸 느낄 때는.

“작전 판에 붙어있는 ‘하나가 되는 순간 우리는 정점으로 간다’라는 슬로건을 모든 선수가 새기고 있다. 훈련에 늦거나, 탄산음료를 마시거나, 야식을 먹는 등 자기관리가 느슨해질 때 벌금을 내기로 했는데, 돈이 잘 모이지 않는다. 그만큼 선수들의 자기관리도 철저하다는 얘기다. 국가대표로서 실수할까 봐 술도 먹지 말자고 약속하고 있다.”

-개인적인 각오는.

“늦은 나이지만 몸 관리 하면 충분히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또 (이완용과 비슷한)이름 탓에 어릴 때부터 ‘매국노’란 얘기도 많이 듣긴 했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라 꼭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알리고 싶다. 나라를 위해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감사하다. 일본에서 ‘애국하는 완용이’의 모습을 기대해 달라.”

-한국 럭비 저변에 대한 절박함도 느껴진다.

“등록 선수는 1,000명이 채 안 되고, 성인 럭비선수가 몸담을 수 있는 팀은 실업팀 3개(한국전력ㆍ현대글로비스ㆍ포스코건설)에 국군체육부대 정도다. 이번 올림픽 대표 선수 대부분이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상태라 병역 혜택조차 누릴 일 없다. 나라와 럭비만 생각하고 부딪혀 볼 생각이다.”

진천=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한국 남자 럭비 대표팀이 지난달 17일 진천선수촌 내 럭비연습장에서 2020 도쿄올림픽을 대비해 훈련하고 있다. 진천=고영권 기자
한국 남자 럭비 대표팀이 지난달 17일 진천선수촌 내 럭비연습장에서 2020 도쿄올림픽을 대비해 훈련하고 있다. 진천=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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