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사태 ‘키맨’ 된 권홍사 회장… 친구 아내냐, 그 아들이냐

입력
2020.01.17 14:52
수정
2020.01.17 17:44

[조재우의 Biz잠망경]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

주식투자 귀재로 IMF 외환위기 때 3,000억원 벌어들여

‘자매의 난’ 때도 한진칼 지분 획득으로 평가차익 500억

한진칼 지분구조
한진칼 지분구조

한진가의 경영권 분쟁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른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은 스포츠 마니아로 사이클 스키 골프가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특히 승마를 좋아했다. 그는 승마하다가 낙마를 해서 뇌수술을 5차례나 했을 정도다. 당시 실명까지는 아니지만 사물이 두 개로 보여서 높낮이를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여러 번 수술대에 올랐다. 그러고도 다시 말을 탔고 이후 서울시승마협회장에 취임했다.

권 회장은 사실 ‘주식 투자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1944년생인 그는 대표적으로 1997년 찾아온 IMF 외환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주식 가격이 폭락했을 때 주식을 대거 사들여 3,000억원을 벌었다. 20여 년 전이니 큰돈이었다. 이 자본을 기반으로 부산의 지역 건설업체에서 수도권으로 진출하면서 기업의 볼륨이 크게 성장, 2019년 시공능력평가에서 13위에 올랐다. 권 회장은 최근 한진가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한진칼 주식 지분을 8.28%까지 끌어올렸다.

짧은 시간 동안 평가차익만 500억원에 이를 정도다. 권 회장은 2005년 반도건설이 여전히 지방의 중견 건설사에 불과하다는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동아건설 대우건설 등의 최고경영자(CEO)가 맡아 오던 대한건설협회 회장직에 올랐고, 2008년에는 압도적인 표 차로 연임에 성공했다. 권 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3월로 예정된 한진그룹 주총이 끝나면 한진칼의 경영은 안정되고 기업가치는 더 오를 것”이라고 했다. 기업가치, 곧 주식가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 회장이 한진칼 주식지분을 사들인 것에 대해 고(故)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과의 각별한 친분이 거론된다. 조양호 전 회장이 대한탁구협회 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맡을 때 권 회장이 대한체육회 이사, 서울시승마협회 회장 등을 맡으면서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통상적이고 공식적인 만남일 뿐 대단히 가까운 사이는 아닐 수 있다.

한진그룹 고위 관계자는 “사진 마니아인 조 전 회장과 권 회장이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가까워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권 회장이 체육회 등에서 맺은 인연에다 사진을 매개로 인연이 깊어졌다는 얘기다. 반도건설이 한진칼 지분을 대량으로 확보한 것도 조 전 회장과의 개인적인 친분과 관련이 적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회사의 내부 사정을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반도건설 측은 “권 회장이 승마와 스키 등을 즐기는 것은 맞지만 조 전 회장과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는 건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권 회장의 사적 동선은 파악하기 어렵다면서도, 조 전 회장과의 동행이 있었더라도 한두 번일 거라는 추측도 내놨다.

반도건설의 한진칼 지분 8.28%(의결권 유효 기준 8.20%)는 상당히 위협적이다. 이는 조원태 한진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등 한진 가족 각각의 개인 지분보다 높다. 게다가 최근에는 경영 참여까지 선언했다.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톡톡히 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투자 목적이나 조 전 회장과의 친분 때문에 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매입했다고 했던 이전 입장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라 한진그룹에서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반도건설이 누구의 편으로 기울 것이냐는 점이다. 재계에서는 조 전 회장과의 인연으로 볼 때 권 회장은 조 전 회장의 자식들보다는 아내인 이 고문과 정서적으로 가까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따라서 조 회장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한진그룹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더욱이 지난해 말 조 회장과 이 고문이 크게 다툰 바 있다. 물론 한진 가족이 지분을 합치지 않으면 가족의 경영권 자체가 위협을 받을 소지가 다분해 다툼이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힘을 합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경영권을 둘러싼 지분 구도가 복잡해진 가운데 조 전 부사장과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 측이 최근 3자 회동을 하고 향후 협력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건설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해명하면서도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했다. 누구든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호시탐탐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남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이들이 공동 전선을 구축해 대응할 경우 조 회장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뿐 아니라 3월 주총을 앞두고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이들의 지분을 합치면 31.98%가 된다. 주총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가족이 힘을 합치되 계열 분리 가능성도 점쳐지지만 사세가 크게 위축될 공산이 크다.

지금의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은 지분 연합구도에 따라서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자신에게 어떤 떡고물이 떨어지느냐가 중요할 뿐, 과거의 인연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산업부 선임기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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