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탈원전 후폭풍에 휘청… '원전 의존형' 경제 탈피 비상

입력
2020.01.16 17:00
수정
2020.01.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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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감소, 인구 5만명 붕괴, 원자력고 경쟁률 하락 줄줄이 악재

경북 울진군 북면 한울원전 인근에 자리한 원룸촌 모습. 2년 전만 해도 전국 각지에서 온 건설 근로자들로 북적거렸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발표 후 최근 공실이 쏟아지고 있다.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경북 울진군 북면 한울원전 인근에 자리한 원룸촌 모습. 2년 전만 해도 전국 각지에서 온 건설 근로자들로 북적거렸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발표 후 최근 공실이 쏟아지고 있다.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해마다 세 수입의 절반 이상을 원전에서 채우는 경북 울진군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후폭풍에 휘청거리고 있다. 건설 근로자로 북적거렸던 원전 일대는 빈집이 속출하고 지역 전체 인구도 급속히 줄고 있다. 2.6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던 국내 유일 원자력 고등학교는 올해 모집 정원을 겨우 넘겼다. 세수가 줄면서 원전 가동을 전제로 추진했던 대규모 지역 개발 사업은 줄줄이 중단될 처지다.

14일 한울원전 1~6호기가 가동 중인 울진군 북면은 쌀쌀한 날씨만큼 스산한 분위기였다. 4, 5층짜리 원룸 건물과 상가가 빽빽하게 들어선 부구리 일대는 대낮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북면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 지역 원룸 건물은 부구리와 나곡리를 합쳐 45개동, 650세대가 넘는다. 인근 죽변면까지 합치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원룸은 원전 건설과 가동에 투입될 인력을 예상하고 건축됐다. 짭짤한 임대소득을 기대했던 건물주들은 정부의 원전 건설 백지화에 된서리를 맞았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방 하나에 월 50만~55만원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월 30만원에도 빈방이 넘쳐나고 있다.

울진 북면 명가공인중개사 이상철 대표는 “신한울 원전이 본래 4호기까지 건설된다고 해 저렇게 많은 원룸이 들어섰는데 절반인 3, 4호기가 백지화됐으니 다 채울 수 있겠느냐”며 “원룸 매매가격도 정부 탈원전 발표 이전보다 30% 가량 떨어졌지만 내놔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력 수요가 적은 봄과 가을 정비 기간에 원전에 투입되는 단기 근로자들로 간간이 원룸을 채우는 실정이다”고 했다.

울진 지역 인구도 급속도로 줄고 있다. 울진의 주민등록인구는 2015년 말 5만3,103명이었으나 2017년 10월 정부의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이후 2018년 9월에는 5만164명, 지난해 6월 말에는 4만9,589명으로 5만명 선이 무너졌다.

경북 울진군 평해읍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등학교 전경. 출처 원자력마이스터고 홈페이지
경북 울진군 평해읍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등학교 전경. 출처 원자력마이스터고 홈페이지

탈원전은 국내 최초로 울진에 문을 연 원자력 인재 양성학교인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해마다 2.65대 1의 높은 입학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올해 신입생은 80명 모집에 84명이 지원하는 데 그쳤다. 마이스터고 재학생들은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달라’는 내용의 손편지 200여통을 청와대로 보내기도 했다.

학교 인근 한 주민은 “원자력마이스터고는 폐교 위기에 처한 평해고등학교를 어렵게 원자력 전문학교로 재탄생시킨 학교다”며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우수한 학생들은 울진의 큰 자랑거리였는데 탈원전으로 학교가 문을 닫을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세 수입도 줄고 있다. 울진군에서 원전 지방세는 전체 세 수입(964억원)의 58%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한울원전 1∼6호기를 운영하는 한울원자력본부가 군에 낸 지방세는 2017년 724억2,000만원이었지만 발전량이 줄면서 2018년 559억4,000만원으로 164억8,000만원 줄었다.

기존 원전의 수명이 다하고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신규 원전 건설이 백지화되면 세수는 더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울 1ㆍ2호기는 각각 7년과 8년 뒤 설계 수명이 끝난다. 신한울 1ㆍ2호기 가동이 올 9월에서 내년 8월로 늦춰진 가운데 신한울 3ㆍ4호기 건설이 중단돼 세수는 물론 고용, 부동산 거래 등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경북 울진군이 매화면 오산리 일대 조성 중인 18홀 규모 골프장의 토목공사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북 울진군이 매화면 오산리 일대 조성 중인 18홀 규모 골프장의 토목공사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원전 건설에 따른 특별 재원을 전제로 추진한 지역 대형 개발 사업도 차질을 빚고 있다. 2017년 11월 착공한 매화면 오산리 121만7,480㎡ 부지 18홀 규모 골프장 건설 사업은 100억원이 넘는 공사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4개월 가량 중단되기도 했다. 신한울 3ㆍ4호기 건설로 재원이 충분하다 여긴 울진군은 탈원전이라는 난관에 봉착하자 급기야 왕피천 대교 건설 등 다른 사업을 미룬 상태다.

울진군 관계자는 “이미 계획한 사업도 정부의 원전 백지화로 축소 등 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새로운 개발 사업은 꿈조차 꾸지 못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찬걸 경북 울진군수가 지난 10일 오후 울진 엑스포공원에서 '2020년 원전 의존형 경제구조 극복 원년의 해 선포식'을 갖고 3대 핵심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울진군 제공
전찬걸 경북 울진군수가 지난 10일 오후 울진 엑스포공원에서 '2020년 원전 의존형 경제구조 극복 원년의 해 선포식'을 갖고 3대 핵심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울진군 제공

울진군도 지난 10일 엑스포공원에서 주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0년을 ‘원전 의존 극복의 해’로 선포했다. 원전에만 기대서는 지역 경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자구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전찬걸 울진군수는 “원자력발전소라는 특정산업에 의존한 지역경제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는지 모든 군민이 체감하는 중”이라며 “원전 의존형 경제 구조를 탈피하는 데 온 힘을 쏟아 군민과 함께 미래 울진을 설계하고 변화하는 울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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