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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대신 도시양봉… 김승윤 의왕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

은퇴 후 도시 떠나기 쉽지 않아 ‘도시 농업’ 결심

[저작권 한국일보] 김승윤 한국생태도시네트워크 사무총장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유네스코회관 옥상 생태공원에서 인터뷰 도중 이야기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벌통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잡념이 사라집니다. 벌집 한 면에 1,500~2,000마리의 꿀벌들이 집을 짓고 있는데, 그들의 움직임이나 웽~~하는 날갯짓 소리를 들으면 그 생명의 소리에 흥분이 됩니다. 양봉가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백만대군을 거느리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하루가 다르게 꿀벌들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경기 의왕시에 사는 김승윤(63) 의왕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는 3년째 벌을 키우고 있다. 2016년 말 그는 32년을 근무한 유네스코(UNESCOㆍ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한국위원회를 은퇴하고 도시양봉에 뛰어들었다. 벌통 2통으로 시작한 첫 해는 장렬한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작년에는 의왕시 그린벨트 지역 인근 땅을 빌려 비닐하우스를 짓고는 벌통 6통을 놓고 한 해를 보냈다. 올해는 14통의 벌통이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다.

김 대표는 “입춘이 지나면 바빠지기 시작한다”며 양봉 과정을 설명했다. “3월부터는 꿀벌의 개체수가 엄청나게 늘어나 벌통을 늘리는 분봉(여왕벌과 일부 일벌을 다른 집이나 통으로 옮기는 일)을 해 줘야 합니다. 5월엔 아카시아 꽃의 꿀, 6월엔 밤꽃 꿀, 7월에는 야생화 꿀을 채취하죠. 가을부터는 점점 활동이 줄어 11월말 즈음엔 월동에 들어갑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과 도시에서 보낸 김 대표가 도시양봉에 뛰어든 것은 18년 전 서울 중구 명동의 유네스코 회관 옥상에 ‘옥상정원’을 지으면서부터다. 2002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과학팀장을 맡고 있던 김 대표는 어느 날 생태건축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고 관련 강좌를 듣게 됐다. 그는 “당시에만 해도 한국에는 옥상정원 개념이 없었다”며 “최초의 옥상정원이 분당의 모 제조업체 사옥 옥상에 만들어진 정원이었고 서울시가 서소문별관 옥상에 실험 수준으로 도입한 것이 전부였다”고 회상했다. 서울 중심부의 대표적인 도심이라는 명동의 상징성을 고려해 김 대표는 서울시에 옥상정원 사업을 신청했고, 예산지원을 받아 처음으로 옥상정원을 꾸렸다.

1967년 지어져 미래유산으로도 지정된 13층짜리 유네스코 회관 옥상에 그는 흙을 깔고 나무를 심었다. 약 20m짜리 습지까지 조성했다. 김 대표는 “인공적인 정원이 아닌, 자연 그대로를 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고 회고했다. 콘크리트 숲 속에 심어진 초록 숲은 명동의 명물이 돼 18년이 지난 현재도 직장인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처음엔 그의 머리 높이까지밖에 오지 않던 20여대에 불과했던 대나무는 3m 높이로 자라 일군을 이뤘고, 묘목 수준이었던 나무들도 존재감 있게 풍성함을 자랑하며 정원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김 대표의 도시양봉도 처음에는 이 옥상정원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꿀벌들의 죽음과 환경파괴에 대한 강연을 보게 됐어요. 환경파괴로 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생산량의 약 70%가 꿀벌의 수분(受粉ㆍ종자식물에서 수술의 화분이 암술머리에 옮겨 붙는 일)에 의해 생산되기에 꿀벌이 사라지면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된다는 사실은 그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후 김 대표는 도시양봉을 지원하던 서울시를 통해 서울의 도시양봉가들의 모임인 ‘어반비즈’와 연결, 이 옥상정원에 5통의 벌통을 설치하게 됐다. 처음엔 도시의 삭막함에 꿀이 나올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꿀벌의 생존력에 감탄하게 됐다. 김 대표는 “명동에서 꿀벌들이 꿀을 따올 곳이 어디 있나 싶지만 1km 떨어진 남산이나 청계천에 가서 꿀을 따 오더라”고 말했다.

이내 김 대표는 도시양봉 예찬자가 됐다. 은퇴 다음 해에는 꿀벌에 대한 해외 도서를 번역하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프랑스 파리는 도시양봉의 중심지가 됐고, 미국 뉴욕도 2010년 들어 도시양봉이 합법화가 됐습니다. 오히려 도시가 시골보다 양봉하기 좋다는 의견도 있어요. 열섬현상으로 도시가 시골보다 따뜻하고, 농약 피해가 적기까지 하거든요.”

[저작권 한국일보] 김승윤 사무총장. 박형기 인턴기자

그는 주변 은퇴자들에게도 도시양봉을 적극 추천한다고 했다. 그도 여느 베이비부머(1955~1963년 생)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시골생활을 꿈꿨다. 도시의 척박함과 번잡함이 싫어서다. 김 대표는 “전남 장흥이 고향이라 항상 시골을 그리워하고 귀농을 꿈꿨지만 정작 집에서는 난 화분도 죽이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주변의 은퇴 후 귀농ㆍ귀촌한 부부들 간 의견이 틀어져 결국 찢어져 사는 등 가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많이 목격했다. 대신 그가 눈을 돌린 것은 도시농업이었다.

김 대표는 “은퇴하고 가장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도 농업이었다”고 말했다. 농업이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스갯소리로 도시양봉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벌통(약 3kg) 들 힘만 있으면 90세가 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이야기해요. 10통 내외를 관리한다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한 통 당 반 말(13kg)의 꿀을 수확할 수 있으니까요. 5월부터 7월까지만 바짝 바쁘고 겨울엔 쉬기도 하고요.”

현재 도시농업은 귀농ㆍ귀촌에 비해 걸음마 수준이다. 그러나 도시농업이 최근 각광을 받으면서 이를 지원해 주는 지방자치단체가 많아졌고, 온라인 커뮤티니를 중심으로 관련 정보도 쉽게 접할 수 있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도시농업은 곧 생태농업이라고 강조했다. 수익성을 목표로 대규모로 이뤄지는 농업에서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이 불가피하지만 도시농업은 전통적인 양식과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벌통 옆에 일군 작은 텃밭에서 작년에 배추와 무를 길렀어요. 꿀벌에 영향을 주지 않게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키웠는데 작물이 작지만 얼마나 단단하던지요.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생태적 생활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도시농업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겁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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