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제럴드 포드의 행운과 저격범들(1.15)

입력
2020.01.15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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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2월 법원으로 호송되는 사라 제인 무어. AP 연합뉴스
1975년 12월 법원으로 호송되는 사라 제인 무어. AP 연합뉴스

미국 제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1913~2006)는 선거를 치르지 않고 부통령과 대통령이 된 유일한 인물이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1948년 미시간주 하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한 뒤 무려 13선을 이어가며 공화당 원내대표와 하원의장을 지냈다. 1973년 부통령 스피로 애그뉴가 뇌물 사건에 연루돼 사임하자 하원의장이던 그는 수정헌법 25조 공직 승계 순위에 따라 부통령이 됐고, 1년 뒤인 1974년 8월 닉슨이 워터게이트 탄핵 위기에 몰려 사임하면서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재임 중 두 차례 암살 위기를 모면한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기도 했다. 1975년 9월 5일, 범죄 컬트 집단 ‘맨슨패밀리’의 멤버 리넷 프롬(Lynette Fromme)이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주의사당 건물 앞에서 벌인 저격 미수 사건과 보름여 뒤인 9월 22일 사라 제인 무어(Sara Jane Moore)가 역시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 정문 앞에서 시도한 저격 사건이었다. 두 범인 모두 여성이란 점도 이채로웠다.

프롬은 다중 살인죄로 기소된 조직 리더 찰리 맨슨의 석방을 주장하며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팔을 뻗어도 닿을 거리에서 포드에게 M-1911 피스톨 권총을 쏘았지만, 미리 장전을 해두지 않은 어이없는 ‘실수’ 탓에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했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34년을 복역한 뒤 2009년 8월 가석방됐다.

극좌 테러 집단인 심바이오니즈 해방군(SLA)의 일원이던 사라 무어는 “세계 변혁을 위해” 대통령 저격을 감행했다. 특이하게도 그는 FBI의 급여 없는 정보원 노릇도 했지만, 오히려 그런 사정 때문에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도 약 12m 거리에서 포드를 쏘았지만, 범행 당일 아침에 구입한 38구경 리볼버의 조준선 오차(6인치) 때문에 명중시키지 못했다. 그는 “헛되이 평생 갇히게 된 건 유감이지만, 내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저격이었으므로 후회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1976년 1월 15일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아, 만 32년을 산 뒤 2007년 12월 31일 가석방됐다.

둘 모두 포드가 세상을 뜬 뒤에야 세상 구경을 다시 하게 된 셈이었다. 포드는 미국 역대 두 번째 장수 대통령으로 만 93년을 살았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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