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의 굿모닝 2020s] 60세 은퇴 후 40년… “사회는 재정 투입, 개인은 여생 설계를”

입력
2020.01.14 04:40
수정
2020.01.14 17:39
28면

<4> 100세 인생

제8회 노인건강대축제가 열린 지난해 10월 15일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서 게이트볼에 출전한 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8회 노인건강대축제가 열린 지난해 10월 15일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서 게이트볼에 출전한 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인구 변화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라고 말한 이는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다. 인구 변동은 예정된 미래다. 이 분명한 미래가 21세기에 들어와 우리 인류에게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100세 인생, 축복이자 재앙

근대사회의 인구 변동은 세 단계를 거친다. 많이 낳고 많이 죽는 ‘다산다사(多産多死)’에서 많이 낳고 적게 죽는 ‘다산소사(多産小死)’를 경유해 적게 낳고 적게 죽는 ‘소산소사(小産小死)’로 나아가는 단계가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 인구와 사회의 고령화다. 고령화는 일반적으로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7%를 넘는 ‘고령화사회’와 14%를 넘는 ‘고령사회’를 거쳐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행된다.

고령화를 앞서 겪은 나라들은 서구 국가들이다. 독일과 영국은 각각 1972년, 1975년 고령사회가 됐고, 이탈리아는 1988년에, 프랑스는 1990년에 도달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과 미국 사례다. 일본의 고령화 경향이 빨랐다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더뎠다. 일본은 1994년 고령사회가 된 반면, 미국은 2014년에야 고령사회에 도달했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보다 상이한 출산율에 기인한 것이었다.

고령화가 가져오는 변화 가운데 주목할 것은 ‘100세 인생 시대’의 개막이다. 100세 인생 시대란 우리 인간 수명이 100세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경영학자 린다 그래튼과 경제학자 앤드루 스콧의 ‘100세 인생’을 보면 흥미로운 자료가 나온다. 2007년생 아기 절반이 생존했을 것으로 예측되는 최후의 시점에서 그들의 나이는 독일 102살, 영국 103살, 프랑스 104살, 미국 104살, 일본 107살이다.

사회학적으로 ‘나이 듦(aging)’은 사람들이 늙어가면서 영향을 받는 생물학적ㆍ심리적ㆍ사회적 과정 전체를 뜻한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고, 다시 100세 인생으로 나가는 이러한 과정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전통사회에서 노년은 지혜의 상징이었다. 문명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21세기 현재 경험 많은 노인들의 능력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그러나 노년에 대해선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두드러졌다. 작가이자 철학자인 시몬 드 보부아르가 1970년에 발표한 ‘노년’은 노년의 사회적 의미를 다룬 선구적인 저작이었다.

지팡이를 짚은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노인. 게티이미지뱅크
지팡이를 짚은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노인. 게티이미지뱅크

보부아르에 따르면, 노인이란 지위는 주체적으로 취득한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자본주의 문화는 젊음을 찬양하지 나이 듦을 기리지 않는다. 노인은 결국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이 소외의 감정은 슬픔과 분노를 격발시킨다.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년의 삶의 질은 계급에 따라 격차가 두드러진다. 특히 하층계급 노인은 직업을 잃으면 쓸모없는 잉여의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고 보부아르는 분석한 바 있다.

이처럼 100세 인생은 빛과 그늘을 동시에 안고 있다. 100년 가까이 살 수 있으니 ‘축복’인 동시에 쓸쓸하며 병들고 무시당하는 노년이 길어지는 만큼 ‘재앙’으로 볼 수 있다. 2020년대를 맞이해 바야흐로 우리 인류는 100세 인생 시대라는 낯선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2020년대와 100세 인생 시대

2020년대 현재 그렇다면 100세 인생 시대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에 대해선 일본 사례가 상당한 함의를 안겨준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도달했고, 2013년 전체 인구 중 고령자의 비중은 25%로 늘어났다. 오는 2024년에 다시 3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를 고려할 때, 일본은 가히 고령화의 선도국이라 할 수 있다. 2015년 현재 일본에서 100세 이상의 인구가 6만명 정도인데 2050년에는 70만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가을 노인들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바둑을 두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가을 노인들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바둑을 두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00세 인생 시대의 도래는 사회의 모습을 적잖게 바꾼다. 저널리스트 김웅철은 일본 초고령사회가 낳은 낯설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풍경들을 열거한다. 간병이 필요한 고령자와 장거리 여행을 함께 해주는 ‘트레블 헬퍼’, 혼인관계는 유지하되 자유롭게 사는 ‘졸혼(卒婚)’, 고독사에 대비해 들어두는 ‘고독사 보험’, 웰 다잉(well dying)을 준비하는 ‘종활(終活)’, 같은 공동묘지에 묻힐 이들과 교류하는 무덤 친구인 ‘묘우(墓友)’, 사망한 후 반려동물 보호를 부탁하는 ‘펫 신탁’ 등이 그것들이다.

100세 인생은 우리 인류가 처음 걸어가는 길이다. 그래튼과 스콧이 지적하듯,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근대인에게는 교육ㆍ취업ㆍ은퇴라는 삶의 세 단계 경로가 주어져 있었다. 그런데 100세 시대가 열리면서 이러한 경로가 재구성되고 있다. 당장 60세 전후로 은퇴한 다음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는 노인세대나 곧 노년에 이를 장년세대에겐 중대한 실존적 문제다.

그래튼과 스콧은 제대로 예측하고 계획을 세운다면 100세 인생이 ‘저주’가 아니라 새로운 시간과 기회를 안기는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100세 인생 시대의 개막에 대응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역할과 개인의 태도다. 도쿄대 고령사회종합연구소는 ‘도쿄대 고령사회 교과서’에서 사회적 과제로 ‘활력 넘치는 초고령 미래사회 구축’을, 개인적 과제로는 ‘인생 설계 능력 제고’를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의료, 노인복지, 연금, 주거환경, 교통 및 이동시스템의 제도 개선과 개혁, 제론테크놀로지(고령자를 위한 생활자립 지원 기술연구)의 활용, 그리고 고령자를 위한 법적 제도 정비 등은 활력 있는 초고령사회를 위해 요구되는 사회적 과제들의 목록이다.

100세 인생에서 가장 큰 그늘은 빈곤과 질병이다. 이 위험들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그동안 사회보험ㆍ사회복지ㆍ공공부조ㆍ보건의료와 공중위생을 포괄하는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추진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사회보장과 경제의 관계다. 이에 대해 도쿄대 고령사회종합연구소는 말한다.

지난해 가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한 노인이 혼자 벤치에 앉아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가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한 노인이 혼자 벤치에 앉아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회보장 정책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현재 상황에서는 연금제도의 안정적 유지와 함께 저출산 대책이나 고령자의 의료 및 요양 서비스 효율화를 목표로 적절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 개인적 과제도 중요하다. 개인적 과제의 목표는 아름다운 나이 듦, 다시 말해 성공적인 노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자기 여생을 설계하고 유지하는 것에 있다. 젊은 세대라고 100세 인생 시대를 피해갈 순 없다. 이른바 인생의 ‘이모작 또는 다모작 시대’가 열리는 만큼 100세 인생 시대에 걸맞은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준비해가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와 100세 인생

우리 사회에서 100세 인생 시대는 어떠할까. 우리 사회는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26년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41년에는 전체 인구 중 고령자 비율이 30%로 증가하며, 2050년에는 35%까지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때가 되면 고령화 수준이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게 된다. 초고령사회의 도래와 100세 인생 시대의 개막은 2020년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변동의 하나가 될 게 분명하다.

문제는 이러한 100세 인생 시대의 도래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노인빈곤율 및 노인자살률은 현재 우리나라 노인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제노인인권단체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노인의 소득안정성, 건강상태, 취업 가능성, 사회적 연결 정도 등을 기준으로 노인이 살기 좋은 나라를 평가했을 때, 2015년 우리나라는 96개국 가운데 60위에 머물렀다. 아시아에서는 일본(8위), 베트남(41위), 중국(52위)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6월 서울 금천구에 문을 연 '100세 정원'. 국내 첫 치매 예방 목적 시설이라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서울시 제공
지난해 6월 서울 금천구에 문을 연 '100세 정원'. 국내 첫 치매 예방 목적 시설이라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서울시 제공

어떻게 할 것인가. 저출산ㆍ고령화 문제가 국가적 의제로 부상한 이후 지난 20년 가까이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어느 정부에서도 그 효과가 컸다고 보긴 어렵다. 100세 인생의 개막에 제대로 맞서기 위해선, 앞서 말했듯, 사회의 역할과 개인의 태도 모두 중요하다. 앞선 국가들의 로드맵과 액션플랜을 참조해 우리 사회 상황에 걸맞은 고령화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의 굿모닝 2020s’는 2020년대 지구적 사회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일보> 연재입니다. 매주 화요일에 찾아옵니다. 다음주에는 ‘기후 변화’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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