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톺아보기] 우렁쉥이와 블랙아이스

입력
2020.01.10 04:40
29면
말이 어려우면 원래 전하려던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다. 낯선 ‘우렁쉥이, 선두리’를 국민이 다 아는 ‘멍게, 물방개’로 쓰면 전문성이 떨어지는가? 낯선 말, 현학적인 말은 소통의 벽을 높일 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말이 어려우면 원래 전하려던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다. 낯선 ‘우렁쉥이, 선두리’를 국민이 다 아는 ‘멍게, 물방개’로 쓰면 전문성이 떨어지는가? 낯선 말, 현학적인 말은 소통의 벽을 높일 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렁쉥이’란 멍게의 다른 말이다. 원래 표준어였으나 방언이던 멍게가 더 널리 쓰이게 되자 규정에 따라 둘 다 표준어가 되었다. 멍게의 주요 생산지에서 쓰는 말이 전국적으로 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방개’와 ‘선두리’도 이와 같은 이유로 둘 다 표준어이다. 전통적 표준어는 학술 용어로 남아 있다.

멍게가 표준어가 되기 이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가 보자. ‘멍게’를 먹으면서도 ‘우렁쉥이’라 적던 시절, 우렁쉥이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으리라. 어떤 소설가는 ‘인생이란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우렁쉥이 같은 거’라는 구절을 남기기도 했다. 우렁쉥이를 원뿔형의 우렁이로 잘못 연상한 것이다. 작가의 오해로 독자들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말이 어려우면 원래 전하려던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다. 낯선 ‘우렁쉥이, 선두리’를 국민이 다 아는 ‘멍게, 물방개’로 쓰면 전문성이 떨어지는가? 낯선 말, 현학적인 말은 소통의 벽을 높일 뿐이다.

올겨울에 기사에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바로 블랙아이스다. 낯선 말이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매연과 먼지가 눈과 함께 엉겨 붙어 검은색을 띠므로 블랙아이스(Black Ice)라 부른다’고 한다. 마치 저승사자를 연상하게 하는 표현법인 것 같다. 전문용어라 해도 좋고, 비유법이라 해도 좋다. 그런데 기사 제목에 블랙아이스가 나오면 뉴스 시청자나 신문 구독자들은 상당히 언짢아 한다. 기사에 붙은 댓글에는 안타까운 사연에 공감하기보다 굳이 그 말을 써야 했는지에 대한 불만이 더 많다. 대다수가 아는 ‘살얼음’을 두고 ‘블랙아이스’라는 말을 쓰면 내용의 전문성이 올라가는 것인지 묻고 싶다. 사람들은 소통을 원한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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