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우의 Biz잠망경] “기업 임원의 연봉은 총수 일가에게 욕먹는 대가”

입력
2020.01.08 18:45

 3세 경영이 주류로 자리잡은 된 우리나라 대기업 

 갑질이나 폭행, 약물복용 등 3세 일탈도 잦아 

 황제처럼 군림하는 총수에 싫은 소리 못하는 임원 

지난 6일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에서 진행된 ‘한화솔루션 비전 선포식’에 참가한 한화그룹 3세 김동관(왼쪽에서 다섯번째) 한화솔류션 전략부문 부사장이 임직원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한화솔루션 제공
지난 6일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에서 진행된 ‘한화솔루션 비전 선포식’에 참가한 한화그룹 3세 김동관(왼쪽에서 다섯번째) 한화솔류션 전략부문 부사장이 임직원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한화솔루션 제공

경영권 분쟁은 통상 한 세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2, 3세 등으로 대를 이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최근 경영권 분쟁을 시작한 한진그룹을 비롯해 삼성 두산그룹도 이미 한차례 이상의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그래서 1세대의 재벌이 3대쯤으로 내려가면 10여개의 그룹으로 ‘세포 분열’하고 일부는 사라지기도 한다. 현대그룹도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단독체제에서 분화를 거듭해 정씨 직계 혹은 방계 가문이 운영하는 그룹만해도 10개가 넘는다. 그래서 ‘범 현대그룹’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삼성그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속담에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있다. 또 ‘삼대 거지 없고 삼대 부자 없다’고 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3대까지가 부자가 버틸 수 있는 한계선이라는 얘기다. 기업의 역사가 오래된 서양에서도 한 가족이 3대까지 부를 이어 나가는 비율이 10%를 겨우 넘어간다고 한다. 결혼 등으로 잔가지가 쳐지면서 개개인의 재산과 지분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치열하게 창업을 했던 1세에 비해 2, 3세들은 통상 기업가 정신도 약하고 경영 능력도 부족했던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무거운 상속세율도 가족 경영권의 지속성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재벌총수가 상속 등 지분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에서 타계를 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은 재작년, 박용곤 전 두산 회장과 조양호 전 한진 회장은 작년에 타계했다. LG와 두산그룹의 경우는 지분정리와 상속세납부 등의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되었으나 한진그룹의 경우 가족들이 지분을 고르게 나눠가진 것이 화근이었다. 가족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시라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취약한 구조가 되어있다. 상속세도 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여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세금을 내려고 지분을 매각할 경우 경영권은 더욱 취약해질 수 밖에 없다. 행동주의 펀드 KCGI(강성부펀드)는 호시탐탐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

삼성그룹도 병상에 누워있는 이건희 회장의 재산과 지분을 순조롭게 정리하지 못할 경우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나 외부세력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중소ㆍ중견기업들 중에서는 상속세에 부담을 느껴서 경영권을 포기한 사례도 꽤나 있다. 그래서 ‘징벌적 상속세’라는 얘기가 나온다. 재벌기업에서 편법상속과 증여, 일감몰아주기 등이 예외 없이 발생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대체로 3세 경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3세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3세들은 기업을 경영해본 경험도 일천하지만 회사의 고위직으로 왕족처럼 군림해 안하무인인 경우가 많다. 한진뿐 아니라 한화 CJ 등 다른 그룹에서도 3세들의 갑질이나 폭행 약물복용 등의 일탈이 수시로 나타난다.

하지만 기업 내부에서는 왕족처럼 군림하는 총수일가의 불법ㆍ편법과 일탈에 대해 바른 소리나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2번 이상 싫은 소리를 하면 잘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 재계의 정설이다. 그래서 갑질 사건이 자주 터져 나온다. 기업 임원들 사이에서는 ‘임원의 연봉은 총수 일가에게 욕먹는 대가’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래저래 재벌이 3대 이상을 지속하는 것은 대체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닌 것 같다. 또 3세 경영으로 넘어가면 지분과 경영을 둘러싸고 편가르기와 분쟁이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다.

아무튼 재벌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치열하고 저열한 과정과 처절하고 황폐했던 결말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가족 본인 혹은 측근 인사 문제가 시발점이 되고 형제자매간 고소ㆍ고발로 이어진다. 이후 가족 내부의 치부와 비리가 속속들이 검찰 등 수사기관에 알려지고 결국에 누군가가 구속되거나, 때로는 가족의 자살 등 죽음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패턴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와중에 약한 모습을 본 외부 자본이나 투기세력은 허약해진 경영권에 개입해 하이에나처럼 단물을 빨아먹으려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속성에 다름 아니다. 3세 경영구도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문제다.

조재우 산업부 선임기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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