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눈] 수영장 생리기간 할인, 꼭 ‘가임기 여성’이라 써야 했을까

입력
2020.01.06 16:17
수정
2020.01.0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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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영장 게시판에 버젓이. “잠재적 임산부 취급” 비판 잇달아 

한 공립 스포츠센터 할인 안내 포스터에 ‘가임기 여성’ 할인 항목이 적혀있다. 독자 제공
한 공립 스포츠센터 할인 안내 포스터에 ‘가임기 여성’ 할인 항목이 적혀있다. 독자 제공

서울 은평구에 사는 이모(25)씨는 얼마 전 한 공립 스포츠센터를 방문했다가 황당함을 느껴 발길을 돌렸다. 할인 안내 포스터에 ‘수영에 한해 만 13세 이상 만 55세 이하 가임기 여성 회원은 5%가 할인된다’고 적힌 문구 때문이다. 이씨는 “여성 할인 혹은 생리결석 할인이라고 불러도 되는데 굳이 ‘가임기 여성’이라고 써 붙여놔야 하냐”며 “‘13세~55세 여성은 모두 임신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표현해 잠재적 임산부 취급하는 것처럼 보여 불쾌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수영시설에서 특정 나이 대 여성들을 할인해주는 제도를 둘러싸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때아닌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일부 공공수영시설에서 ‘가임기 여성 할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용어 사용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임기는 사전적 의미로 임신이 가능한 기간 혹은 임신이 가능한 연령의 범위를 의미하는데, 여성 할인 도입 취지와 직접 관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수영장 이용 여성에 대한 할인 요구는 2006년 “여성은 생리 기간 동안 수영장을 이용하지 못하는데 남성과 같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시작했다. 서울시는 2008년 “시립 수영장을 이용하는 13세 이상 55세 이하의 여성에 대해서는 월 사용료에 한해 100분의 10을 감면한다”는 조례를 신설했다. 이에 따라 시립 체육시설인 잠실 제1,2 수영장과 창동문화센터 등은 월 사용료에서 10%를 할인하고 있다. 다른 시ㆍ군ㆍ구도 지자체 수영시설의 이용요금에서 5~10%를 할인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조례 조항에 ‘가임기 여성’이라는 표현이 없지만, 서울시 조례 개정안 제안 이유에도 ‘가임기’라는 표현은 나와 있다. 개정안 검토보고서에는 “가임기 여성에 대해 ‘수영장 생리할인 제도’를 실시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음으로 수영장 사용료를 감면할 수 있도록 조례 일부를 개정하려고 한다”고 제안 이유가 적혀있다. 이외에도 가임기 여성이라는 표현은 보고서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한 구립 체육시설(위) 할인 혜택 안내문에 가임기 여성이라는 표현이 적혀있다. 반면 또다른 구립 체육시설(아래) 할인 안내문에는 ‘13세 이상 55세 이하 여성’이라고만 적혀 있다. 각 구청 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 캡처
한 구립 체육시설(위) 할인 혜택 안내문에 가임기 여성이라는 표현이 적혀있다. 반면 또다른 구립 체육시설(아래) 할인 안내문에는 ‘13세 이상 55세 이하 여성’이라고만 적혀 있다. 각 구청 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 캡처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에서마저 ‘가임기 여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SNS에 ‘가임기 여성 할인’이라는 문구를 두고 “운동해서 건강하게 아기 낳으라는 거냐. 가임기 나이 기준은 또 뭐냐”(ra****), “가임기라는 기준도 모호하지만 오해가 생길만한 단어다”(he****), “수영 강습 등록에도 가임기 여성 타령이다”(qw****) 등 비판적인 의견이 잇달았다.

지난해 12월에도 SNS에서 ‘양심있는 시민은 가임기간(생리) 중에 수영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수영장 안내문이 퍼지면서 비판이 줄 잇기도 했다. “생리 기간은 가임 기간이 아니다. 기관이 저렇게 멍청해서 어떡하냐”(ff****), “가임 기간과 생리 기간은 너무 다른 기간이다”(st****), “가임기라고 생리 중인 건 아니다”(bo****) 등이다.

‘가임기 여성’ 논란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문제 제기됐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모 여성단체 활동가는 2014년 수영 할인을 두고 “여성의 가임기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데 이를 나이 기준으로 삼아 분류하는 것은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또 2016년에는 행정자치부가 ‘가임기 여성 지도’를 공개했다가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로 보는 것 같다”는 비판에 직면해 하루 만에 삭제하기도 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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