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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다만 그 변화의 방향성이 어떤 일관성과 가치 그리고 목표를 갖느냐에 따라 그의 삶과 인격을 평가할 수 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건 경솔한 일이다. 그러나 변곡점이나 중요한 변환점은 있다. 거기에서 그의 속살이 보인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지점이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건 어떤 사람과 어울리는지, 누구에게 영향을 받는지에 따라 그의 삶과 인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함축한다. 처음부터 사악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선한 사람도 어느 한순간 못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변절한다. 물론 이익에 따른 변절이 가장 흔하다. 일제강점기에 매국에 앞장선 친일파가 그랬고 군사독재시절 문민의 무늬가 필요해 차출했던 교수ㆍ기자ㆍ작가 등이 그랬다. 그의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에 따라 인격이 변화하고 언행이 변질하는 경우는 여전하다.

제자백가의 다양하고 위대한 사상과 삶을 종합한 ‘여씨춘추’에는 그런 이들이 흔하다. 그 책의 ‘당염(當染)’ 편에서 묵자는 물들이는 것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물감을 잘 보고 물들여야 한다. 푸른색에 물들이면 푸른빛이 나고 노란색에 물들이면 노란빛이 난다. 순임금은 허유와 백양에게, 우임금은 고요와 백익에게, 탕임금은 이윤과 중훼에게서 물들었다. 무왕은 태공망과 주공 단에게 물이 들었다. 그에 비해 하나라의 걸은 간신과 기종융에게, 은나라의 주는 숭후와 악래에게, 주나라 여왕은 괵공장보와 영이종에게, 그리고 유왕은 괵공고와 제공돈에게 물들었다. 앞의 네 사람은 성군으로 뒤의 네 사람은 혼군으로 평가된다. 결국 어떤 사람에게 물들었느냐에 따라 천하를 다스릴 수 있었고 천자에 세워졌으며 그들의 공적과 이름이 천지를 덮게 할 수도, 나라를 망하게 하고 죽은 뒤에도 모멸을 당하며 천하에 불의로 수치를 당할 수도 있었던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무조건 좋은 방향으로만 혹은 나쁜 방향으로만 변하지는 않는다. 오르막 내리막처럼 사람의 변화도 때로는 좋게 때로는 그 반대로 변한다. 다만 그 변화의 방향성이 어떤 일관성과 가치 그리고 목표를 갖느냐에 따라 그의 삶과 인격을 평가할 수 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건 경솔한 일이다. 그러나 변곡점이나 중요한 변환점은 있다. 거기에서 그의 속살이 보인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지점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그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도 어느 한 일면만 혹은 특정한 순간만 보며 판단하는 건 위험하다. 그건 입장 바꾸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그러니 쉽고 가볍게 남을 평가해서는 안 되며 특히 다짜고짜 비난하는 건 더더욱 위험하다. 긴 호흡으로 그리고 깊은 안목으로 지켜보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을 평가하는 일은 참으로 지난한 일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힘든 걸 쉽게 해낸다. 때론 예리하게 정곡을 찌르기도 하고 때론 예측하지 못한 반응으로 질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걸 바라보면서 어떤 이는 환호하고 어떤 이는 통탄하기도 한다. 심지어 같은 사람인데 상황과 때에 따라 그 평가가 정반대에 서기도 한다. 그건 그 사람의 면목이 워낙 다양하고 층위가 넓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달리 보자면 양쪽 다 그를 제대로 평가할 안목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건 그만큼 어렵고 무겁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사람과 어울리는 이들, 그가 물들 수 있는 사람들의 면목을 살펴서 읽어낼 수 있다. 여불위는 묵자의 언급을 끌어내면서 이렇게 핵심을 말한다. “무릇 임금 된 자는 임금이 되었기 때문에 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고, 임금이 되었기 때문에 편안함을 누리는 것이 아니며, 도를 행하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누리는 것이다.” 도를 행하는 건 올바로 물이 드는 것으로부터 생긴다.

명예와 명성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그의 삶과 인격에 대한 세평으로 비롯한다. 노나라 혜공이 재양을 시켜서 천자에게 천지에 지내는 제사와 조상에 지내는 제사를 거행하겠다고 간청했고 평왕이 사각을 사신으로 보냈다. 혜공은 그를 노나라에 머물러 살도록 붙잡았다. 그래서 그의 후예들이 노나라에 살게 된 것이다. 묵자는 이들에게서 배웠다. 이 두 선비는 작위를 받지 않고서도 다른 사람을 입신하게 해 주었고 상급과 국록을 받지 않고서도 다른 사람을 이롭게 했다. 명예는 그렇게 생기는 것이고 좋은 물은 그렇게 드는 것이다. 인생 짧지 않다. 명예는 긴 인생 전체에 대한 평가에서 온다. 그러니 직수굿하게 지켜볼 일이다.

연초부터 어느 논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안타까워하는 이도 있고 반가워하는 쪽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옳고 그름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인격과 태도에 대한 평가까지 양극화한 양상으로 대립한다는 점이다. 그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방증이든지 그에 대해 제대로 몰랐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도 그를 ‘직접 만나보지 않았기에’ 평가할 입장이 아니다. 반면교사로 삼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누구에게 물들었는지(물론 본인은 ‘물들 처지’가 아니라 강변하겠지만) 관찰해 보면 조금은 진면목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남 말할 처지가 아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물들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할 일이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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