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방담] 북한 치킨게임식 위협 속 ‘미국과 대화 판 깨지 않겠다’ 속내도 보여

입력
2020.01.04 09:00
수정
2020.01.12 11:22

북한 전원회의 결과의 의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9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2일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9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2일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생략했다. 2012년 집권 이후 처음이다. 지난달 초 ‘크리스마스 선물’을 운운할 정도로 심상치 않던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나흘간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가 신년사를 대신했다는 분석이다. 전원회의 결과를 통해 드러난 북한의 의도와 향후 북미관계 등을 짚어보기 위해 정치부 외교안보팀ㆍ청와대팀 기자, 워싱턴 특파원이 카톡방에 모였다.

나를 돌아봐(돌아봐)= 북한이 지난해 12월 초 예고했던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5차 전원회의를 지난 연말 나흘간 열었습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평화의 비둘기(비둘기)= 대북 전문가나 정부 관계자들은 전원회의가 ‘신년사 예고편’ 격이니 늦어도 12월 27일 전에 열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예상을 깨고 29일이 돼서야 ‘28일 전원회의를 열었다’고 알렸습니다. 전원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언제 끝날지, 어떤 내용을 토의하는지 북한은 상세히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에 통일부 출입기자들과 당국자들은 나흘 내내 긴장 상태에 있어야 했습니다. 매년 1월 1일 발표하던 김 위원장의 신년사도 올해는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연초마다 최고 지도자의 신년사를 학습하는데, 노동신문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올해는 주민들이 전원회의 소식을 읽고 있었습니다.

돌아봐= 올해는 신년사가 아니라 전원회의 결과를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었군요. 그럼 전원회의 메시지 중 어떤 대목을 주목해야 할까요.

마음은콩밭에(콩밭)=아무래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미국과의 대화를 완전히 닫아두지는 않겠다고 한 부분이었습니다. 북한은 전원회의 결정서에서 “미국이 장난만 치고 있다”는 식의 비난을 퍼붓긴 했지만, “미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입장도 달라질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습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이 예고한 '새로운 길'이 미국과의 대화 중단 선언일 수 있다는 일각의 예상이 빗나갔다고 봐야죠.

레고는 설명서대로(레고)= 전원회의 결정서에서 "자력갱생한다고 구호만 외치면서 실제로는 인민경제의 자립 토대를 정비하고 보강하는 데 힘을 넣지 않고 있는 폐단"이라고 지적한 부분도 아이러니합니다. 폐단을 만든 주체가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지 않지만, 아마도 당 간부들을 향해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자력갱생을 약속한 김 위원장이어야 할 텐데 ‘위대한 영도자’인 김 위원장이 책임을 질 수는 없으니 당 간부들을 질타한 셈이죠. 수령체제인 북한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돌아봐=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내놓을 메시지에도 관심이 쏠렸었죠.

포토맥 명탐정=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를 얻기 위해 치킨게임식 위협은 하고 있지만, 완전히 판을 깨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게 이번 전원회의 결과를 통해 드러났죠.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거론한 것도 어느 정도는 북한의 움직임을 파악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북한의 이런 위협 방식을 두고서 워싱턴 전문가들은 대부분 오판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탄핵과 대선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완화 등의 양보를 해주기는 더 어렵고, 오히려 강경 대응에 나설 수 있는데 북한이 이를 놓치고 있다는 얘기죠.

레고= "그댄 먼 곳만 보네요. 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 하는 노래가사가 떠오릅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먼 곳만 보네요. 새로운 전략무기가 바로 여기 있는데"로 바꿔 부를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됐다고 봅니다.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충격적 행동’ 운운하며 미국을 향해 일종의 충격요법을 쓰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선물은 예쁜 꽃병일 수 있다"고 딴청을 피웠습니다. 이는 대선 국면에 접어들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과도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즉 선거를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약점인 북한과 중동 문제의 이슈화를 최대한 피하려 할 것입니다. 김 위원장의 으름장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당분간 '꽃병 타령'만 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돌아봐= 북한이 새로운 전략무기 개발을 언급했습니다. 향후 도발 가능성을 여전히 남겨 둔 것으로 보이는데요. 새로운 전략무기는 무엇으로 추정할 수 있나요.

밥먹었더니 배불러(배불러)= 새로운 전략무기로 거론되는 건 개량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정도입니다. 먼저 ICBM의 경우 2단 이상의 로켓을 쏘아 올리거나, 고체연료를 탑재한 ICBM을 선보이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북한이 다탄두 ICBM을 발사할 것이라 예측하기도 하지만, 이는 현재 북한이 보유한 기술론 쉽지 않다는 게 중론입니다.

비둘기= SLBM의 경우 지난해 10월 바지선 위에서 시험발사를 했기 때문에, 실제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시험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SLBM은 핵무기 투발수단 중 가장 은밀하고 요격이 힘들어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만큼 미국 측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돌아봐= 전원회의 보도에서 남북관계나 남측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이 없었는데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 온 우리 정부는 어떤 반응인가요.

콩밭= '남한 패싱'을 두고 우리 정부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란 분석이 많았습니다. 정부는 일단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어요. 지난해 남북관계가 오히려 2018년보다 후퇴한 상황이었던 만큼 남한을 언급하는 순간 온갖 비난과 비판이 난무했을 것이 자명했는데, 차라리 ‘패싱’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겁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지만 청와대는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사실 이번 전원회의와 관련해 북한이 앞으로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가 우리 정부의 최대 관심사였죠. 북한이 대화의 문을 닫지 않겠다고 한 만큼 청와대에서는 “지금부터가 우리 정부가 제 역할을 해야 할 순간”이라며 남북관계 돌파구 마련을 위해 각오를 다지는 기류도 감지됐습니다.

돌아봐= 전원회의를 통해 북한의 노동당 조직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 인사가 있었나요.

비둘기= 핵ㆍ미사일 등 전략무기 개발을 지휘한 리병철이 정치국 위원과 당 부위원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전략무기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런 공을 인정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은 직급(제1부부장)은 같지만, 선전선동부에서 당 핵심인 조직지도부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레고= 대미 투톱이자 외무성 라인인 리수용과 리용호가 보이지 않았죠. 북미협상 결렬의 책임을 이들에게 물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협상이 재개되면 이들이 복귀할 수도 있으나, 일단은 협상 결렬의 희생양으로 파악됩니다.

돌아봐= 결국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미국 대선 일정이나 3월 한미연합군사훈련 등이 변곡점이 될 거 같은데 북한이 어떤 자세로 나올 것으로 예상하나요.

배불러= 당장 북측이 판을 깨는 고강도 무력 시위를 하진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하지만 북측의 최대 관심사인 트럼프 대통령 재선과 관련해 2월 ‘아이오와 코커스’나 3월 ‘슈퍼 화요일’ 등을 전후로 선을 넘지 않는 수준의 저강도 무력시위를 할 것이라는 예측도 많습니다.

비둘기= 대북전문가들은 1~3월이 남북, 북미 관계의 고비가 될 것으로 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원 탄핵심판과 재선 레이스 등 불확실성이 가득해 예측이 어렵지만, 우리 정부가 북미협상의 불씨를 살리려면 적극적인 대북 메시지나 선언적 조치들이 필요하다고들 합니다. 북한을 다시 대화 테이블로 끌어낸다는 측면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 일정 조정이라는 카드를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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