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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산불 4개월째 야생동물 5억마리 희생 
 동작 느린 코알라 8천마리 이상 목숨 잃어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에서 캥거루가 불길을 피해 도망가고 있다. news.com 캡처
지난달 31일 호주 빅토리아에서 발생한 산불로 불에 탄 캥거루 사체가 보인다. EPA 연합뉴스

화마가 4개월째 호주의 대지를 휩쓸면서 무수한 야생동물이 목숨을 잃거나 멸종할 위기에 처했다. 외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전해진 현장의 모습은 ‘종말론적 대재앙’이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만큼 처참하다. 어린 캥거루가 지옥 같은 불길을 피해 이리저리 내달리고 끔찍한 불길과 연기 속에서 탈진한 코알라는 물을 찾아 필사적으로 인간에게 매달린다. 무서운 화염의 기세에 날갯짓마저 꺾인 앵무새의 최후도 안타깝다.

시드니 대학의 생태학자들에 따르면 지난 9월 시작된 대형 산불로 인해 4억8,000만 마리 이상의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가 사라졌다. 새해 들어서만 빅토리아와 뉴사우스웨일스, 사우스 코스트 등지에서 130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하면서 희생된 동물의 수는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주민 피해도 상당하다. AP통신에 따르면 주민 수천 명이 불길을 피해 해안선 지역으로 대피했고, 최소 17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난달 27일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에서 코알라 한 마리가 사람에게 매달려 물을 마시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야생동물보호단체가 제공한 호주 산불에서 구조된 코알라가 화상 입은 부위를 붕대로 감은 모습(왼쪽 사진). 불길로 끔찍하게 타버린 코알라 사체. news.com 캡처
지난달 29일 호주 블루마운틴 인근에서 구조된 화상을 입은 주머니쥐가 야생동물보호단체의 치료를 받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산불로 가장 큰 희생을 치른 동물은 호주의 대표 캐릭터이기도 한 코알라다. 동작이 느리고 이동을 잘 하지 않는 습성 때문인데 뉴사우스웨일스 중북부 해안에서는 전체의 3분의2에 해당하는 8,000마리 이상이 지난 4개월 사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 지역에서는 정확한 피해 상황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생태학자 마크 그레이엄은 “화염이 나뭇가지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데 반해 코알라는 재빨리 도망갈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시드니 대학교 디이터 호출리 교수는 “캥거루나 코알라처럼 잘 알려진 동물뿐 아니라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곤충과 희귀 식물까지 완전히 전소될까 두렵다”면서 “야생 생물이 급감하면 멸종위기종이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미래에 심각한 우려가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사이언스 포 와일드라이프(Science for Wildlife)의 켈리 레이 박사는 “화재지역에서 야생동물을 구할 정부의 자원도, 계획도 없는 게 문제”라며 “동물보호단체가 구조활동을 위해 재난 지역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규정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한편 독일 서부의 한 동물원에서도 1일(현지시간) 화재가 발생해 오랑우탄과 침팬지 등 유인원 30여 마리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0년 시작과 함께 지구촌 곳곳에서 동물들이 안타까운 수난을 당하고 있지만 이를 막아낼 인간의 힘과 의지는 미약하기만 하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1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산불이 지나간 자리에 불탄 소의 사체가 널려있다. EPA 연합뉴스
2일 호주 빅토리아주 말라코오타에서 군인들이 수륙양용 차량을 이용해 해변에 있던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인공위성에 찍힌 호주 베이트먼스 베이의 대형 산불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에서 소방관이 호스로 물을 뿌리며 불길을 막고 있다. AFP 연합뉴스
1일 독일 서부 크레펠트의 한 동물원에서 풍등이 원인으로 보이는 화재로 인해 오랑우탄과 원숭이 등 동물 30여마리가 숨졌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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