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똑똑한 기계가 사람을 잡아먹는다

입력
2020.01.03 04:40
31면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브리핑룸에서 ‘인공지능(AI) 국가전략 발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브리핑룸에서 ‘인공지능(AI) 국가전략 발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인간을 뛰어넘는 똑똑한 기계, 인공지능은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토머스 모어는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확대되던 시기에 귀족과 지주들이 농지를 양을 키우는 목초지로 바꾸면서 평범한 농부들이 빈민과 부랑자로 전락해 고통받는 상황을 “양들이 너무나도 욕심 많고 난폭해져서 사람들까지 잡아먹는다”라고 묘사했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가 만든 귀족과 지주의 탐욕이 평범한 사람들을 불행으로 내몰고 있는 당시 상황을 비판한 것이었다.

그런데 50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양이 기계로 바뀌어 사람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오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 변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자리를 자동화 기계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맥킨지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일자리의 최대 30%가 자동화로 사라지고, 한국에서도 7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자동화로 사라지는 일자리가 산업화된 국가보다 더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똑똑한 기계는 일자리의 규모를 축소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디지털 기술 변화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2018년까지 OECD의 주요국들에서 고용률은 낮아지지 않고 오히려 높아졌다. 인류가 사람, 동물, 자연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생산력을 높일 수 있게 했던 산업혁명 시기에도 전체 일자리는 줄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의 변화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똑똑한 기계가 대체하는 일자리는 그동안 사람들에게 괜찮은 임금과 안정적 고용을 보장했던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인 반면, 늘어나는 일자리의 대부분은 저임금과 고용이 불안정한 나쁜 일자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더 높은 임금을 보장받는 일자리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40~50대의 평범한 사무직ㆍ제조업 노동자가 최첨단 디지털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일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디지털 기술 변화의 결과는 고용의 감소가 아니라 대다수의 괜찮은 일자리가 나쁜 일자리로 대체되면서 사람들의 삶이 양극화되는 현실이다. 디지털 기술 변화가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인적 자본을 소유한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시장에서 버는 소득만으로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불편함을 덜어 주고, 노동자의 생산력을 높여 주던 순종적인 기계가 이제는 욕심 많고 난폭해져서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다. 하지만 영국에서 사람을 잡아먹었던 것은 양이 아니라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이윤만을 추구했던 귀족과 지주였던 것처럼, 지금 일자리를 빼앗고 사람들을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고 있는 것도 똑똑한 기계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을 불행으로 몰아넣는 힘은 돈만 되면 사람이 기계에 잡아먹혀도 개의치 않는 인간성을 상실한 자본주의의 탐욕이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 변화를 막을 수 없다. 막아서도 안 된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기술 변화는 장기적으로 인류를 더 풍요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디지털 기술 변화로 얻게 되는 엄청난 부를 평범한 사람들과 나눌 수만 있다면, 똑똑한 기계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아니라 사람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축복이 될 수 있다. 위험하고, 더럽고, 지저분한 일을 인간 대신 똑똑한 기계가 하고, 인간은 안전하고, 깨끗하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다면 디지털 기술 변화는 인류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미래의 실현 여부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갖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인공지능 국가전략’이 위험한 이유는 그 전략 속에 디지털 기술 변화의 성과를 공정하게 나눌 수 있는 정치적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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