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4단계 BK21 사업 계획을 보며

입력
2020.01.02 04:40
29면
교육부의 이번 4단계 BK21 기본계획(안)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성과평가에 있어 질적 평가로의 전환이다. 좀 늦기는 했으나 성과평가가 질적 평가로 전환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연구의 성과평가에서 논문의 수를 따지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교육부의 이번 4단계 BK21 기본계획(안)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성과평가에 있어 질적 평가로의 전환이다. 좀 늦기는 했으나 성과평가가 질적 평가로 전환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연구의 성과평가에서 논문의 수를 따지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교육부는 지난달 3일 ‘4단계 두뇌한국21 사업 기본계획(안)’을 발표하였다. 2020년 9월부터 향후 7년간 연간 4,080억원 규모로 총 2조9,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4단계 사업에 투입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지난 1999년 시작된 두뇌한국21(Brain Korea 21, 이하 BK21) 사업은 대학원생 및 신진 연구 인력이 안정적으로 학업·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대학원생 연구 장학금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 동안 7년씩 3단계를 거치며 이 사업을 통하여 20여 년간 약 35만명에 달하는 대학원생과 4만명에 달하는 신진 연구 인력이 지원받았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대학원생 지원은 교수 및 대학원생의 논문 수와 영향력 지수 상승으로 이어져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세계적 인지도를 높였고 우리 대학의 연구 중심 풍토를 정착시키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 뒤에는 그늘도 있었다. BK21사업의 선정 및 평가 과정에서 대부분의 평가지표들이 정량화되어 있어 연구 성과의 질보다는 논문 등의 숫자가 강조된 것이 그중 하나이다. 그 결과, 2017년 우리나라의 논문은 숫자로는 세계 12위에 달했으나, 질적인 수준을 보여주는 논문의 피인용 횟수는 32위에 그쳤고, 이제는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성장으로 전환해야 할 시기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정량적인 논문 숫자에만 치중한 나머지 사회와 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것도 사실이다.

교육부의 이번 4단계 BK21 기본계획(안)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성과 평가에 있어 질적 평가로의 전환이다. 필자는 2016년 연구 성과 평가를 질적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몇 개 대학 연구부총장들과 함께 정부에 공개적으로 요구한 적이 있다. 좀 늦기는 했으나 성과 평가가 질적 평가로 전환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연구의 성과 평가에서 논문의 수를 따지지 않는다. 실제로 필자의 학부가 10여년 전 해외 석학 평가를 받을 때, 평가위원들로부터 왜 논문을 그렇게 많이 썼냐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던 적이 있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논문 숫자와 같은 정량적 성과가 아니라 우리의 연구가 학계 및 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양적 성과만 중요하게 따지다 보니 논문을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한 도전적ㆍ장기적 연구하기가 어려웠다.

논문을 내기 가장 손쉬운 방법은 유행하고 있는 주제를 따라 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세계를 선도하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의 성과 평가 기준을 적용하면 아인슈타인도 선정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자조적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또 다른 눈에 띄는 점은 연구 장학금의 현실화이다. 박사과정생의 경우 30% 정도 인상함으로써 아직 미흡하기는 하지만 학업과 연구에 좀 더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고 볼 수 있다. 또 참여 대학의 혁신을 유도하기 위한 당근으로 ‘대학원 혁신지원비’를 신설하여, 대학 본부가 제도 혁신을 선도할 수 있도록 유도한 점도 긍정적이다. 이에 대한 성과 평가를 철저히 하여 대학 본부에 대한 지원 취지에 부합하는 노력과 성과가 있는지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4단계 BK21 사업의 여러 변화들, 특히 양적 평가에서 질적 평가로의 전환은 환영할 만하다. BK21사업의 성과평가 기준이 타 연구 과제의 성과 평가에 적용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의 변화는 우리나라 연구 성과 평가 틀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다만 평가 결과에 대한 공정성 시비로 인한 불신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사람에 대한 투자이며 그런 의미에서 4단계 BK21 사업이 새로운 평가 기준에 힘입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사회 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데 기여할 것을 기대해 본다.

이우일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