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2020년, ‘정치의 해’ 아닌 ‘청년의 해’

입력
2019.12.31 04:40
30면
구독

※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9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두 번째 영입인재로 발표한 만 26세 청년 원종건씨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재영입 발표식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등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원종건씨 는 "우리 사회로부터 받은 관심과 사랑을 정치를 통해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뉴스1
29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두 번째 영입인재로 발표한 만 26세 청년 원종건씨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재영입 발표식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등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원종건씨 는 "우리 사회로부터 받은 관심과 사랑을 정치를 통해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뉴스1

지난 29일 더불어민주당의 청년인재로 영입된 원종건씨의 입장문을 읽다가 눈이 멈추는 부분이 있었다. ‘매년 겨울이면 주민자치센터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김치를 나눠줍니다. 그런데 매년 한 가지 ‘배추김치’만 줍니다. 배부른 투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받는 사람을 한 번만 더 생각하면 배추김치만 고집하지는 않을 겁니다. 갓김치, 파김치, 물김치 중 어떤 김치를 좋아하는지, 김치를 보관할 곳은 충분한지, 한 번 물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돈이 특별히 더 드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주기 전에 받는 사람에게 한 번만 더 관심을 가진다면 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정치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흐름은 청년 주거문제를 주제로 최근 청년들과 촬영을 진행했던 경험으로 이어졌다. 청년들은 청년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많은 정책 중 일부가 효용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청년전세자금대출, 역세권 청년 임대 주택 등의 정책이 있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할 수 있어도 실상은 해당되는 집이 살만한 곳이 아니거나, 적은 이자비용이라 하더라도 저소득 청년들에겐 여전히 부담스러운 비용이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묵묵히 청년들의 성토를 듣고 있던 정부 관계자는 “청년 관련 정책이 180여가지 되고 예산도 25조원 정도 쓰고 있는데 체감도가 너무 낮다”며 “종합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보려 하지만 (산적한 문제들이 많아) 여전히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 내용은 1월초 ‘프란(PRAN)’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문제는 원씨가 지적한 것처럼 ‘당사자들에게 물어 보지 않는 정치’ 때문이다. 20대 국회에서 20대 정치인은 전무하고, 30대 정치인도 3명에 불과하다. 우리 정치에서 청년의 목소리가 사라진 이유다. 청년들은 늘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아닌 정치의 수혜를 입는 소수자의 위치였다. 최근 한 청년단체 대표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청년수당이 청년정책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며 “이전에 수립된 다수 정책들은 대학이나 교육기관, 기업을 통해 청년들을 간접 지원하는 방식이었는데 (청년수당을 통해) 청년에게 직접 지원하고 청년들이 직접 선택하는 방식으로 설계되니깐 (청년들이) 의존하지 않고 자립하며 문제를 해결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국회에서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법이 청년기본법이다. 현재 청년정책의 근거 법은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이 유일하다. 이 법은 청년을 ‘취업을 원하는 사람’으로만 규정한다. 청년 정책이 일자리에만 집중되는 이유다. 청년기본법은 이 같은 인식을 전환하는 내용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청년세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국가나 지자체가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청년들에게 어떤 걸 원하는지 ‘물어봐야만 하는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여야 이견 없이 통과되리라고 예상됐던 대표적 민생법안 중 하나인 청년기본법은 패스트트랙 정국 국회에 발목이 붙잡혀 있다. 이런 정치 현실에서 핀란드의 30대 여성 총리나 거물 정치인들에게 거침없이 쓴소리를 내뱉는 16세 소녀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 관련 뉴스는 우리와는 너무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 앞서 소개한 입장문에서 원씨는 “20대가 정치에 먼저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 정치가 20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년은 ‘정치의 해’가 아닌 ‘청년의 해’가 돼야 하는 이유다.

강희경 영상콘텐츠팀장 kstar@hankookilbo.com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