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인류를 위한 지식 시대의 해적단(1.1)

입력
2020.01.0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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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특허권 등 독점권을 대폭 완화해 인류 지적 성취의 혜택이 보다 고루 퍼져야 한다는 정책을 내건 정치정당 해적당이 2005년 출범했다. 해적당 국제기구 로고. pp-international.net
저작권 특허권 등 독점권을 대폭 완화해 인류 지적 성취의 혜택이 보다 고루 퍼져야 한다는 정책을 내건 정치정당 해적당이 2005년 출범했다. 해적당 국제기구 로고. pp-international.net

34세 스웨덴 청년 리카르드 팔크빙에(Richard Falkvinge, 1972~)가 2005년 12월 16일 ‘피라트파르티에트(piratpartiet.se)’란 웹사이트 도메인을 등록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1일 그 사이트를 통해 정당 창당을 선언하며 지지와 후원을 청했다. 지식ㆍ정보화시대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저작권 및 특허권 전면 개정과 개인 정보 및 프라이버시 강화를 핵심 이념으로 내건 그 정당이, 웹사이트 도메인에서 밝힌 바 ‘해적당(Pirate Party)’이었다. 불과 이틀 사이 약 300만명이 웹사이트를 방문하며 가히 대륙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신년 이색 뉴스에 목말라 있던 유럽 언론 매체들도 앞다퉈 그 소식을 전했다.

옛 바이킹의 민족주의적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과 달리, 해적당은 철두철미 세계주의와 보편주의에 입각한 혁신적이고도 급진적인 정당이었다. 창당 이후 선거 참여를 위한 유권자 지지 서명, 모금 및 선거운동 조직 과정 일체를 6단계의 타임테이블로 투명하게 공개, 유권자들이 마치 게임을 즐기듯 해적당의 창당 및 제도권 진입 과정에 동참할 수 있게 했다.

그해 9월 스웨덴 의회 선거에서 해적당은 3만4,918표(0.63%)를 얻어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하지만 갈수록 심화하는 빈부차와 그 바탕에 놓인 지식정보의 격차, 백신을 두고 의료생존권과 기업 이윤이 충돌하는 사태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온 시민들 중에는 해적당을 유의미한 정치적 대안으로 여기게 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해적당은 저작권ㆍ특허권을 부정하는 대신, 독점적 권리의 시한을 대폭 줄여 지적 재산의 혜택을 최대한 고루 누리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건 인류의 모든 지적 성취가 사회ㆍ역사적 기반 위에서 이뤄지는 것인 만큼, 그 결실도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사상에 기반한 거였다. 물론 저작ㆍ특허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이의 권리는 존중해야 하지만, 그 정도가 인류 보편의 안녕 및 복지, 평등을 저해할 만큼 과도해서는 안 된다는 게 해적당의 입장이었다. 해적당은 그래서 생명 복지와 무관한 상표권이나 의장권 등에 대해서는 간여하지 않았다.

해적당 열기는 유럽과 아메리카 여러 나라로 확산돼 2009년 4월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해적당 국제기구(PPI)가 출범했고 유럽의회에도 2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현재 42개국 회원 정당이 가입해 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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