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해돋이, 유령 정체와 스템피드(12.31)

입력
2019.12.3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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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MIT공대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밝힌 차량 꼬리물기에 따른 ‘유령 정체’ 개념도. csail.mit.edu
미국 MIT공대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밝힌 차량 꼬리물기에 따른 ‘유령 정체’ 개념도. csail.mit.edu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CSAIL)가 교통량 등이 동일한 조건에서 앞차와의 간격을 바짝 좁혀 운행하는 ‘꼬리물기(tailgating)’ 행태가 이른바 ‘유령 정체(phantom traffic jams)’를 유발, 운행 시간과 연료 소비를 대폭 늘린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2017년 발표했다.

앞뒤 차 간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달릴 때와 달리 꼬리물기를 한 차량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발생하는 체증의 원리는 과학적 분석 없이 직관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 명쾌했다. 연구팀은 “우리 인간은 개념적으로든 습관적으로든 눈앞에 있는 것들을 주시하는 만큼 뒤를 돌아보는 예는 드물다”며 “하지만 운전을 하는 동안 뒤를 살필 수 있다면 도로 증설 등 다른 인프라의 추가 투자 없이도 운행시간과 연료 소비량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철새들이 개체 간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이동하는 것을 예로 들며, 자연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그 지혜를 터득해 실천해 왔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스스로 이성적이라고 우쭐대는 인간의 습성이 오히려 맹목적이라는 것, 시뮬레이션 동영상으로 아무리 교육하고 홍보해도 ‘내가 먼저’ ‘조금이라도 먼저’의 충동이 본능처럼 달아올라 별 기대를 걸 수 없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그래서, 자동차 업계의 차량 제어 설비 개선이 해법이라고 권했다. 앞뒤 차량 간격을 자동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라는 것. 근년의 자율주행 등 자동차 기술이 맹목의 인간으로 하여금 철새의 지혜를 조금이나마 뒤따를 수 있게 해 줄지 모른다.

스포츠 스타디움이나 공연장에서 갑자기 인파가 몰려 빚어지는 집단 압사사고(Stampede)도 원리적으로 보자면 맹목적 꼬리물기의 참담한 예다. 불과 5년 전인 2014년 12월 31일 밤 11시35분, 중국 상하이 황푸강변 와이탄 신년맞이 행사장에서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갑자기 인파가 계단으로 몰려 36명이 숨지고 4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다음 날 예정된 시 공식 축하행사는 전면 취소됐고, 침울한 애도의 신년을 맞이했다. 1987년 12월에도 안갯속 운행이 중단됐던 황푸강 루지아주이(Lujiazui) 여객선 운행이 재개되자 앞서 타려던 시민들이 몰려 17명이 숨진 일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인간의 뇌에, 자동차처럼 제어 칩을 심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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