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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대표 생선인 대구는 깊고 진한 맛의 국물을 내기에 좋은 식재료이다. 짧은 시간 우려내도 바다의 내음이 물씬 난다. 게티이미지뱅크

새벽의 노량진 수산시장은 거의 암흑에 가까웠다. 대롱대롱 매달린 알전구만이 드문드문 희미한 빛을 발하는 공간을 돌다가 어느 매대에서 대구를 한 마리 골랐다. 60대가 가까워 보이는 남성이 가죽 재킷 차림에 입에는 담배를 꼬나 물고는 도끼에 가깝도록 두툼하고 육중한 칼로 대구를 내리쳤다. 대구 맛이야 아직 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었지만 시쳇말로 ‘간지’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광경이었다.

압도까지 되지는 않았지만 남성이 대구를 가지고 그리는 그림이 자못 흥미로워 담뱃재가 대구에 떨어질까 염려 같은 건 할 생각도 못했다. 거의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 홍합까지 한 봉지 사서 집에 돌아와 대구를 꺼내보니 알전구만큼 희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통영에 가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그런 반짝이는 은빛도 아니었다. 불을 제대로 밝혀 놓지 않은 판매처에서 예상할 수 있는 품질이랄까. 

대구는 북쪽의 한랭한 깊은 바다에 군집하며 산란기인 12~2월 우리나라 영일만 연안으로 남하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대구와 홍합 국물 내기 

그래도 나름 새벽시장에서 갓 사온 물건이라고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조리를 시작했다. 일단 넙적하고 얕은 냄비에 홍합을 잘 씻고 손질해 담는다. 손질이라고 해봐야 덜 끊긴 ‘수염’을 홍합 껍데기의 돌쩌귀 방향으로 당겨 끊어내는 수준인데, 원래 싼 홍합을 시장에서는 마트보다 더 싸게 파는지라 손질에 손이 좀 더 갈 수 있으니 참고하자. 홍합의 손질이 끝나면 물을 자작하게, 냄비 깊이의 절반 정도 붓고 뚜껑을 덮어 약한 불에 끓인다. 그리고 홍합이 익는 사이 대구를 분류 및 손질한다. 대가리나 꼬리 등, 살이 별로 없는 부위를 적절히 골라 냄비에 담고 찬물을 잠기도록 부어 중불에 올려 끓인다. 내킨다면 마늘과 대파 등을 적당히 던져 넣어도 좋다. 맞다. 대구 국물을 내는 것이다. 남은 대구는 생선살과 이리 등을 분류해 일단 대기시킨다.

대구 국물을 준비해 불에 올려 놓을 시점이면 홍합이 끓기 시작할 것이다. 뚜껑을 열어 절반 정도가 입을 벌렸다면 다시 덮고 불을 꺼 그대로 둔다. 입을 열지 않은 나머지는 남은 열로 마저 익을 것이다. 홍합에게 바통을 이어 받아 대구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줄이고 맛채소를 준비한다. 마늘은 한두 쪽쯤 눕힌 식칼의 날로 꾹 눌러 으깬 뒤 다진다.

셀러리는 맨 아랫동만 세로로 3,4등분한 뒤 가지런히 모아 착착 곱게 썬다. 양파도 셀러리와 비슷한 크기로 썬다. 셀러리와 양파는 서양에서 ‘미르푸아(Mirepoix)’라 일컫는 맛내기 채소 3인방 가운데 둘이다. 대체로 이 둘만 써도 맛은 충분히 나는데, 단맛을 좀 더 원한다면 마지막 멤버인 당근까지 셀러리와 양파처럼 곱게 썰어 공기 등에 담아 둔다. 

동물의 붉은 고기에 비하면 생선은 훨씬 짧은 시간에 맛을 우려낼 수 있으니 맛채소가 다 준비된 시점까지만 끓이면 충분할 것이다. 국물 냄비를 불에서 내려 그대로 두고 다 익은 홍합을 구멍이 뚫린 국자(큰 숟가락처럼 생겼지만 대가리에 구멍이나 틈이 나 있다)나 집게로 건져 그릇에 옮겨 담는다. 국물도 따로 그릇에 옮겨 담는데 체로 찌꺼기를 한 번 걸러준다. 이제 빈 홍합 냄비(넓고 납작한)에서 물기를 완전히 털어내고 올리브 기름이 바닥 전체에 고른 켜를 여유 있게 입힐 정도로 둘러 중불에 올린다. 냄비가 달궈지기 전에 마늘부터 올려 느긋하게 볶다가 투명해지기 시작하면 나머지 맛채소를 더한다. 차가운 채소를 더하면 냄비의 온도가 내려갈 것이므로 일단 중불을 유지하다가 역시 투명해지기 시작하면 약불로 줄여 계속 느긋하게 볶는다. 채소가 땀을 흘려 수분을 뽑아내는 것 같다고 하여 ‘스웨트(sweat)’라 불리는 조리 과정이다. 수분은 불투명해질 때까지 최대한 뽑되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 검정색이 될 때까지 익히지는 않는 게 핵심이다. 

대구를 색다르게 즐기고 싶다면 토마토와 홍합 등을 넣어 서양식 국물요리인 스튜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토마토, 채소, 대구살 넣기 

맛채소에서 충분히 수분을 뽑아내 날렸다면 국물을 부을 차례이다. 이미 홍합과 대구, 두 가지 국물을 우려 놓았으니 ‘블렌딩’은 먹는 이의 몫이다. 둘 다 바닷것이니 시원한 가운데 대구는 바탕을 깔아주고 홍합은 균형을 잡아준다. 따라서 일단 대구 위주에 홍합을 양념처럼 섞어 맛을 보며 마음에 드는 쪽으로 좌표를 맞춰보자. 그리고 모든 판단은 다음의 재료인 토마토를 더하고 난 뒤 해도 늦지 않다. 대구라면 매운탕과 지리의 양 갈래 길에 익숙한 우리다 보니 토마토가 낯설게 다가올 수 있지만 대체로 토마토는 웬만한 육해공 식재료와 두루두루 어울린다.

일단 감칠맛으로 풍성함을 깔아주고 단맛으로 지루함을 잡아준 다음 신맛으로 표정을 관리하는 원리인데, 야들야들한 흰살 생선이면서도 덩치가 큰 대구라면 토마토에 주눅들지 않는다. 따라서 통조림 토마토 한 깡통을 준비해서 건더기만 건져 블렌더로 곱게 갈아주거나, 도구가 없다면 손으로 으깨어 국물에 더한다. 토마토 국물이 튀는 등 약간의 번잡스러움이 딸려 오지만 통조림 토마토를 으깨는 손맛도 나름 시원하니 좋다. 물론 완전히 갈아서 더하는 것과 국물 맛도 살짝 다르다. 

토마토가 적당히 익을 때까지 중불과 약불 사이에서 국물을 보글보글 끓인다. 간과 균형을 보고 소금과 두 가지 국물로 적절히 조절하다가 왠지 대구를 안 더해도 토마토 수프로 그냥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비로소 주인공을 모실 차례이다. 일단 겨울 대구의 핵심인 이리를 적당히 나눈다. 나는 반반으로 나누지만 비율은 원하는 대로 가져갈 수 있다. 어떻게든 조금도 남김없이 다 먹을 것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눈 이리 한 덩이를 국물에 더하고 국자나 거품기로 눈에 띌 만큼의 덩이가 없어질 때까지 곱게 으깬다. 맛채소로 다지고 홍합과 대구로 구축한 뒤 토마토로 표정을 잡아주고, 마지막으로 풍성함과 ‘크리미’함을 한 켜 더하는 것으로 국물의 여정이 끝났다. 이제 대구를 넣자. 기본적으로는 알전구 아래서 담배를 꼬나 문 남성이 토막 친 그대로 쓰면 되지만 넣기 직전 가위로 큰 지느러미들을 잘라내면 먹을 때 한결 더 수월해진다.

대구 토마토 스튜는 넓고 깊지 않은 접시에 담아내는 게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대구는 흰살 생선이니 오래 끓일 필요가 없다. 살의 겉면에서 안쪽으로 절반 정도 투명한 기운이 가셨다면 남은 이리를 더하고 뚜껑을 덮은 뒤 약불에서 3,4분쯤 더 끓이다가 불을 끄고 그대로 둔다. 혹시 익힌 통조림 토마토 특유의 응축된 맛이 국물의 표정에 긴장감을 필요 이상으로 불어넣는 것 같다면 방울토마토 여남은 알을 반으로 쪼개 국물에 더해 3,4분 끓인 뒤 나눈 이리를 더한다. 방울토마토는 항상 다 익은 상태에서 팔리므로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단맛과 신맛으로 약간의 숨통을 불어 넣어줄 수 있다. 

방울토마토를 넣든 넣지 않았든, 새벽시장에서 사오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만든 대구 토마토 스튜가 완성되었다. 조리 과정을 글로 옮기면 이처럼 길어지게 마련이지만 빨리 익는 재료로만 만드는 음식이므로 짧게는 30분, 길게 잡아도 1시간이면 먹을 수 있다. 익은 흰살 생선은 뼈에서 떨어져 나와 켜켜이 부스러지므로 그릇에 담을 때에는 약간의 세심함이 필요하다. 아까 홍합을 건질 때 쓴 구멍 뚫린 국자로 일단 대구살만 건져 그릇에 한데 담아 둔다. 대구살끼리 겹치면 눌려 부스러질 수도 있으므로 깊지 않은 접시나 쟁반에 한 켜로 담는 게 좋다. 

대구 토마토 스튜 위에 허브나 파 등으로 장식하고, 빵을 곁들이면 더욱 맛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파 올리고 빵 곁들여 완성 

이제 국물을 자작하게 담을 수 있을 만큼 깊은 접시나 라면 대접 등에 먹을 만큼 홍합살을 올리고 따뜻한 스튜 국물과 익은 이리를 국자로 떠 담는다. 젓가락이나 포크로 대구살을 뼈에서 살포시 발라낸 뒤 숟가락으로 가볍게 떠(그래야 발라낸 살이 더 부스러지지 않는다) 국물 위에 올린다. 이 자질구레한 과정을 거치는 사이에 대구살이 식었다면 따뜻함이 가시지 않은 국물을 위로 끼얹어 준다. 원래는 처빌(Chervilㆍ파슬리와 비슷한 1년생 초본)을 고명으로 얹어 스튜를 완성하지만 안정적인 판매처였던 백화점에서도 허브의 상태가 안 좋아진 지가 오래인지라 권하지 않는다. 만약 익숙하고 좋아한다면 흔하고 흔해진 고수로 대체해도 좋고, 이것저것 다 번거롭다면 그저 쪽파나 대파를 적당히 썰어 올려도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먹는 사람 마음이니 밥을 곁들여도 대구가 성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토마토와 볶은 채소 등이 맛의 큰 그림을 그리니 구워 익힌 빵이 좀 더 잘 어울린다. 특히 지방을 써 부드럽고 풍성한 식빵보다 치아바타나 바게트, 캄파뉴 등이 이런 스튜에는 바탕의 역할을 잘 한다. 속살이 드러나도록 적당히 썰어 토스터나 팬에 노릇하게 구워 일단 올리브기름에 한 번, 그리고 국물에 한 번 푹 찍어서 먹는다. 설탕을 단 한 톨도 쓰지 않은 짠맛 위주의 음식에서 끌어낼 수 있는 최선의 단맛 가운데 한 줄기가 회색의 건조한 겨울날 피어 오른다.

왠지 입을 가셔주는 반찬 같은 게 필요하다면 올리브를 곁들이고, 그래도 토마토 스튜인데 와인이 도저히 빠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국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샤블리(지역명, 포도 품종은 샤르도네이)를 한 병 딴다. 두툼한, 소위 ‘풀바디’의 화이트 와인이면서 신맛을 적당히 갖추고 있어 토마토에 주눅들지 않으며, 원래 바다였던 지역에서 기르는 포도로 빚었으니 홍합 국물과도 잘 맞는다. 

대구는 튀김으로도 적합한 생선이지만, 개체수가 줄면서 피시버거에는 쓰이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피시버거가 사라진 이유는 

노량진 수산시장의 알전구 시대는 막을 내렸고, 굳이 새벽 도매 시장까지 어둠을 뚫고 찾아가지 않더라도 대구를 살 수 있다. 하지만 대구든 스튜든 크게 관심이 없는 이라면 여러모로 품이 덜 드는 책이라도 한 권 권하고 싶다.

바로 마크 쿨란스키의 ‘대구’이다. ‘대구’는 소금이나 우유처럼 인류가 오랫동안 써 온 보편적인 음식의 문화사를 주로 정리하는 저널리스트 마크 쿨란스키의 대표작으로, 흔하디 흔한 바이킹의 해상제국 건설에 식량으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 등 세계의 역사와 지도를 바꾼 물고기의 연대기이다. 마치 대구 속살의 결처럼 딱딱 들어맞게 정리한 역사 자체로 흥미롭지만, 사실 책의 정수는 그 끝에 남는 메시지이다. 흔하다고 여겨 잡고 또 잡은 나머지 이제 개체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니 해양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국산 생태는 왜 먹기 어려워졌으며 패스트푸드점에서는 흰살 생선 튀김을 끼운 피시버거를 더 이상 팔지 않을까? 바로 ‘대구’ 속에 답이 있다. 어린이를 위한 ‘물고기가 사라진 세상’도 같은 내용을 다룬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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