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상 심사평] “평행우주론 재밌게 풀어, 아이들만 보기엔 아까워”

입력
2019.12.27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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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회 어린이ㆍ청소년 부문 수상작 ‘우주로 가는 계단’

우주로 가는 계단

전수경 지음ㆍ소윤경 그림

창비 발행ㆍ176쪽ㆍ1만800원

이야기의 현장은 월드 아파트 101동이다. 2001호에 사는 지수는 매일 20층 계단을 오르내린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폐소공포증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701호 할머니 오수미와 만난다. 우리 우주 외에 다른 우주가 있다는 ‘평행우주론’을 계기로 과학을 좋아하게 된 지수에게 701호 할머니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홀연히 사라진다. 지수는 아이돌이 꿈인 102호 희찬이, 미국 수사드라마 CSI의 열혈 팬인 901호 민아와 함께 할머니의 행방을 좇는다.

올해 어린이ㆍ청소년 부문의 공동수상작인 독특한 이야기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행우주론이라는 과학소설(SF)적인 모티프가 작동한다. 오수미는 미래에서 온 물리학자다. 그리고 각 장마다 재미있는 과학적 사실이 등장한다. 과학은 숫자로 표현된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소설은 아니다. 모티프만 보면 현장은 미래도시 어디여야 할 것 같지만 그냥 우리가 사는 동네다. 101동 1층부터 20층에 사는 주민들은 우리가 매일 만나는 이웃이다.

계단에서 사라진 오수미와 지수는 2025년 9월 7일 케임브리지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한 명은 우주를 건너고, 다른 한 명은 시간을 거슬러서. DNA 구조를 밝힌 왓슨과 크릭이 저녁마다 맥주를 마신 캐번디시 연구소 앞의 이글 펍이라면 더 근사할 것 같다.

나는 17층 아파트의 16층에 산다. 굳이 17층에 올라가서 1층까지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지수처럼 각 층 각 호의 문 앞을 살폈다. 여기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서른네 집 가운데 다섯 집이 신문을 본다. 깜빡이는 비상등은 없다.) 그리고 꿈꿔 본다. 혹시 우리 아파트에서 내가 오수미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우주로 가는 계단’은 어린이와 청소년만 읽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책이다. 동네의 어른들, 선생님들 그리고 과학자들이 꼭 읽어야 한다. 전수경 작가의 첫 번째 책이다. 더 멋진 두 번째 책을 기대한다. 올해 어린이ㆍ청소년 부문은 정말 잘 선정했다. 책을 뽑고 이렇게 뿌듯하다니.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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