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해서 서울 마이홈 꿈꿨는데… 30대 “정부가 사다리 걷어차”

입력
2019.12.20 04:40
수정
2019.12.20 07:2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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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50에 분양시장서도 밀리는데 실거주 주택 구입마저 대출 막아” 

 “9억원 이하 주담대는 변함 없어…부동산 광풍에 편승한 욕망일 뿐”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새내역 인근 상가의 부동산중개업소에 부동산 매물들이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새내역 인근 상가의 부동산중개업소에 부동산 매물들이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12ㆍ16 대책을 통해 고가 주택 구입용 대출을 강도 높게 규제하자 30대를 중심으로 “정부가 서울 진입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중장년층과 비교해 청약시장 경쟁력이 떨어지고 축적된 자산도 적어 차입을 통한 주택 구매 외엔 뾰족한 서울 진입 방법이 없는데 정부가 통로를 차단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앵그리(angry) 30대’의 반응을 두고 내집 마련과 자산증식 기회가 가로막혔다는 좌절감의 투영이라는 분석 한편으로, ‘부동산 광풍’에 편승하려는 젊은 세대의 욕망과 조바심의 발로라는 비판적 지적도 나온다.

 ◇30대 내집 마련에서 멀어지나 

19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16일 ‘부동산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서울 등지의 시가 9억원 초과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낮추고 15억원 초과 아파트 구입엔 대출을 금지하는 대책을 시행하자 30대를 중심으로 반발이 커지고 있다. 40, 50대에 비해 자산은 적지만 앞으로 벌어들일 소득에 기댄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서울 주요 지역에 진입하려던 희망이 좌절됐다는 것이다.

최근 30대는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전체 거래 중 30대 매입 비율이 올해 처음 30%선을 돌파했다. 전통적 ‘부동산 큰손’인 40대를 넘어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분양보다 매매에 집중하는 30대의 전략은 청약시장에서의 불리함과 관련 있다. 청약은 무주택기간이 길수록 가점이 높아지는 구조라 30대가 선배 세대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난달 분양가 상한제 확대 시행으로 중장년층이 묵혀둔 청약통장을 적극 꺼내들면서 30대의 당첨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기존 주택 구매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30대 입장에서 대출 규제는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30대 서울 아파트 매매 비중 추이. 그래픽=강준구 기자
30대 서울 아파트 매매 비중 추이. 그래픽=강준구 기자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전세로 살고 있는 조모(35)씨는 대출을 받아 이 지역 아파트를 사려다가 이번 정부 발표로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그는 “요즘엔 서울 비강남권도 9억원 넘는 아파트가 허다한데, 실거주자의 대출까지 막는건 현금부자나 금수저 외엔 서울에서 살지 말라는 꼴”이라며 “맞벌이라 신혼부부 특별공급 신청도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정부로부터 투기꾼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상에선 “586세대는 서울 아파트를 싼값에 사는 특혜를 얻지 않았느냐”며 논란이 세대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는 “갭투자자나 다주택자 대출을 금지하는 것은 맞지만 무주택자의 내집 마련용 대출까지 막는 건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일자리와 소득이 있는 사람에겐 대출을 열어 집을 장만하도록 하고 은퇴 후에도 그 자산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번 조치는 젊은 계층이 자산을 축적할 기회를 잃게 해 장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광풍 편승 욕망일 뿐” 비판도 

고가 아파트에 해당되는 대출 규제를 두고 젊은 세대가 ‘내집 마련 꿈이 사라졌다’고 반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무주택자나 신혼부부를 위한 정책모기지론과 9억원 이하 주담대는 이전과 동일한 만큼 비싼 주택을 구매하려는 욕심만 버린다면 이번 대책이 주택 구입에 큰 제약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 국책사업감시팀 팀장은 “지금 집값은 이미 일반 월급쟁이가 살 수 없는 수준”이라며 “대출 규제를 푼다면 무주택자에게 기회가 오기보단 투기세력의 이익을 불릴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30대의 ‘부동산 사다리론’은 부동산 광풍에 편승하려는 욕망의 반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불로소득을 위해 과도하게 빚을 얻겠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고, 가계부채가 거시경제의 뇌관이 되는 점을 고려하면 대출을 규제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12ㆍ16 대책 발표 이후 논란이 된, 15억원 초과 아파트 대출금지 관련 담보가치 산정 시점이 대출신청일이라고 이날 밝혔다. 대출신청일에 집값이 15억원을 넘지 않는다면, 대출실행일에 15억원을 넘었다고 해도 대출을 내준다는 의미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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