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복지 지출, 과연 ‘퍼주기’인가

입력
2019.12.19 04:40
29면
복지예산이 낭비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복지지출 자체를 의심하기 보다는, 정부가 과연 복지전달체계를 잘 구축하여 수혜자를 제대로 파악하고 전달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복지예산이 낭비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복지지출 자체를 의심하기 보다는, 정부가 과연 복지전달체계를 잘 구축하여 수혜자를 제대로 파악하고 전달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내년도 보건복지예산이 올해 대비 14.2% 증가한 82조8,203억원(정부 총지출의 16.1%)으로 편성됐다. 관련 보도를 접하면서 복지 예산에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저출산ㆍ고령화 대책과 소득 양극화 해소 노력이 잘 반영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먼저 퇴직자 수와 기대수명 증가, 장기요양 적용 범위 확대로 연금과 보건 부문에서의 지출 증가는 예상한 대로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육아휴직급여, 미취학 아동에 대한 보육비 지원 등 가족급여가 늘어나고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생계지원 수요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전히 복지 얘기만 나오면 ‘퍼주기’라는 비난부터 나온다. 사회보장제도가 안착되기까지 반세기 이상의 오랜 기간 동안 복지가 확대된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 복지수준은 견주기 민망한 수준인데도 말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18년 20.1%)의 절반 수준(11.1%)에 불과해 최하위를 면치 못한 수준이다. 프랑스(31.2%), 독일(25.1%), 일본(21.9%, 2015년), 미국(18.7%)과의 격차는 너무 크다.

국제사회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빈부격차가 심화하는 가운데 ‘포용적 성장’에 주목했다. 세계은행은 시장 및 자원 접근성에 대해 균등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OECD는 2016년 각료 이사회에서 포용적 성장을 위해 △공정경쟁 △공공부문의 개입 △소득불평등 해소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UN도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동목표 중 하나로 ‘불평등 완화’를 제시했다.

우리 경제의 난치병인 양극화는 향후에도 승자독식 속성을 지닌 기술발달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더 심화된 불평등으로 전이될 우려가 크다. 한시라도 빨리 포용적 방식의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이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 복지정책은 소득 분배 개선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OECD 발표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지출 규모는 2017년에 183조9,040억원으로 10년간 100조원 이상 증가했지만, 지니계수(처분가능소득 기준)는 2006년 0.306에서 2016년 0.304로 거의 변하지 않았고, 같은 기간 소득 5분위 배율(소득 상위 20% 계층 소득을 소득 하위 20% 계층 소득으로 나눈 수치)도 5.38배에서 5.45배로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예산 한계로 당장 필요한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투입만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퍼주기’로 단언하는가. 오히려 내년도 예산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예산 증액은 전액 가계에만 주어지는 혜택이 아닌 사회보장 부문과 의료 및 보건업 등 사회서비스산업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또 아동ㆍ보육 등 가족정책을 위한 예산 증액도 현금성 이전지출보다는 현물 비중이 커서 공공투자의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말이다.

복지지출은 정부의 가계에 대한 직접 이전지출뿐만 아니라 보건ㆍ의료, 사회보장 등 공공서비스산업에 대한 투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 소비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경제 소득 흐름 속에서 개별 산업과 가계의 성장효과를 유발한다. 재분배 과정은 시장경쟁의 결과인 본원적 분배를 보정하는 것으로, 선진 자본주의체제 유지에 있어 중요한 국가의 책무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복지지출과 같은 정액배분(lump-sum transfer)은 가격기구를 왜곡시키지 않고 효율적 자원 배분을 달성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기도 하다.

복지예산이 낭비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복지지출 자체를 의심하기보다는, 정부가 과연 복지전달체계를 잘 구축하여 수혜자를 제대로 파악하고 전달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복지 수혜자에 대한 예산 투입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복지 효과가 나타나고, 이를 통한 생산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용환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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