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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오랜 커피의 서자(庶子), 로부스타
우간다 카강고라는 이름의 커피 영농조합 농민들과의 간담회. 바이어 입장에서 어떤 품질의 커피를 선호하는지 설명 중이다. 커피 품질에 대한 중요성은 로부스타라고 예외는 아니다. 최상기씨 제공

우간다 북동쪽, 케냐와 국경을 가르는 엘곤산을 다녀온 다음날 아침 전날과 정반대 방향인 남서쪽으로 향했다. 수도 캄팔라(Kampala)를 출발한 차는 바다처럼 드넓은 빅토리아 호수를 왼쪽에 두고 서쪽으로 계속 이동해 마사카(Masaka)와 음바라라(Mbarara)를 지나 부세니(Bushenyi)라는 지역에 다다랐다.

우리가 찾은 곳은 카강고(Kagango)라는 이름의 소규모 커피 영농조합. 약 270명의 농부가 81헥타르(ha) 면적의 농장에서 매년 50톤 정도의 로부스타 커피를 생산하는 농민 조합이다. 농부 한 사람당 200kg가 채 안되는 커피를 생산하고 있으니, 농가들이 얼마나 영세한지 대충 짐작이 간다.

차에서 내려 손목에 찬 고도계를 확인하니 1,530m를 가리킨다. 아라비카 커피와 달리 로부스타는 열대의 저지대에서 주로 자란다. 베트남이나 서아프리카 등 주요 로부스타 커피 산지는 대개 해발 500m 아래의 평평한 지표면에 자리한다. 경작 환경이 다른 농작물과 별다를 것 없어 기계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병충해 등 외부 환경 변화에도 강해 생산성 측면에서 본다면 아라비카보다 한 수 위다.

그런데, 우간다의 로부스타는 해발 1,300m에서 1,800m에 이르는 높은 구릉지역에서 재배한다. 우간다의 평균적 생활 고도가 높은 영향이지만, 높은 고도에서 재배한 로부스타는 커피의 밀도가 단단하고, 비교적 부드럽고 달콤하기 때문에 품질이 우수하다. 아울러 기계 수확이 어려운 구릉의 재배환경이나 기계 장비를 보유하기 어려운 경제 여건 등의 이유로 모두 손 수확에 의존한다. 그래서 우간다 로부스타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대부분 이탈리아의 짙은 에스프레소 용으로 수출된다.

우리가 도착하니 이미 조합장을 비롯한 20여 명의 농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환대해준다. 손님을 위해 내어준 커피는 쓰고 달다. 로부스타의 쓴 맛을 설탕이 애써 감추는 듯 했다. 커피보다 함께 나온 몽키 바나나에 자꾸 손이 갔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농민 간담회의 주된 얘기는 역시 품질이다. 높은 가격을 받고 싶으면 붉게 잘 익은 체리만 수확해라. 커피 재배지 어디를 가도 들리는 비슷한 얘기다. 비교적 저렴한 로부스타도 예외일 수 없나 보다. 품질관리를 위한 교육 활동은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다.

붉게 잘 익은 로부스타 커피 열매. 길게 뻗은 가지로 체리가 빼곡하게 매달려 있는 은간두 품종이다. 로부스타는 아라비카보다 가격이 저렴하지만, 우간다 농민들은 직접 손으로 수확한다. 최상기씨 제공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가 에티오피아냐, 아니면 바다 건너 예맨이냐 주장이 나뉘는 것처럼 로부스타의 원산지도 콩고(현재의 콩고민주공화국)와 우간다로 나뉜다. 우간다 사람들이 주장하는 커피의 기원은 우간다가 부간다 왕국으로 불리던 먼 옛날, 어느 두 집안이 커피 열매 안에 든 콩 한 쪽씩을 나눠 먹으며 우정과 신의를 다졌다는 일종의 가족 결합 의식에서 출발한다. 아라비카 커피가 에티오피아의 염소 목동 칼디가 처음 발견했다는 속설이 있는 것처럼 그야말로 전설같은 얘기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로부스타가 처음 발견된 것은 우간다 서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콩고의 오지였다. 19세기 말 벨기에의 식물학자인 에밀 롤랑(Emil Rolland)이 콩고를 여행하면서 우연히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커피나무를 발견했고, 이를 채집한 것이 첫 과학적 발견이다. 이 묘목을 당시 커피 녹병이 만연해 있던 인도네시아에서 시험 재배를 했는데, 병해에 내성이 있을 뿐 아니라, 기존 아라비카 종에 비해 수확량도 많아 병충해에 강하다(robust)는 의미로 로부스타란 이름을 붙이게 됐다.

우리에게는 아라비카 커피가 익숙하지만, 사실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37~40%는 로부스타다. 인도, 서아프리카,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많이 자라지만, 로부스타는 생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베트남이 최대 생산국이다. 뒤를 이어 브라질 25%, 인도네시아 15%, 인도 6%, 우간다 4.5% 등지에서 로부스타가 생산된다.

코페아 카네포라(Coffea Canephora)라는 학명을 가진 로부스타는 흙, 나무, 고무 등의 좋지 않은 향과, 쓰고 강한 입안의 촉감(Mouthfeel)으로 소비자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저렴한 커피로 내몰려 왔다. 같은 커피지만 늘 아라비카에 밀려 커피의 서자(庶子)라는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때 강한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이태리의 커피 전통에 맞아 환대를 받기도 했다. 잘 가공 처리된 수세식 로부스타는 낮은 품질의 아라비카보다 더 좋은 크레마를 만들어낸다고 해 전통적인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 블렌딩에서는 10~15%의 비율로 로부스타가 사용된다. 그러나 요즘에는 생산량의 대부분이 대규모 제조공장으로 옮겨져 인스턴트 커피와 커피음료를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우리가 간편하게 즐기는 믹스커피나 캔 커피 등은 대부분 원가가 낮은 로부스타 커피를 원료로 만들어진다.

로부스타 수요의 비중은 아라비카 커피가 쥐고 있다. 아라비카의 가격과 수요의 변동에 따라 로부스타의 생산량이 달라진다. 예컨대 국제 커피가격이 상승하면 거대 다국적 커피기업들이 아라비카를 대체할 저렴한 생두를 찾게 되어 로부스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다.

우간다의 커피 생산량 중 약 80%는 로부스타다. 그래서 우간다는 아프리카에서는 에티오피아에 이어 2위, 전 세계에서도 8위의 커피 생산국이지만, 우리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로부스타의 생산량이 월등하게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약 26만톤 가량의 로부스타 커피가 생산됐다.

우간다의 로부스타는 은간다(Nganda)와 에렉타(Erecta, Coffea Quillou) 등 크게 2가지 품종으로 나뉜다. 에렉타는 강한 가로 줄기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줄기가 발달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워낙 많은 열매들이 매달려 있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줄기가 거의 꺾이다시피 아래로 처져 있는 모양이다. 은간다는 세로 줄기 기둥에 열매를 매단 가로줄기가 길게 이어져 있는데, 에렉타와 마찬가지로 빼곡히 열매를 매달고 있다. 비교적 작고 짙은 녹색 잎이 특징이다.

이른 아침에 숙소를 떠난 차는 날이 어두워서야 다시 수도인 캄팔라로 돌아왔다. 아프리카의 밤이 더 캄캄하다는 것은 선입견일까. 도시 위로 떠오른 초승달이 환하게 보이는 것은 아프리카의 밤이 더 어둡기 때문이 아니라, 맑은 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초승달의 모양이 낯익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한 초승달은 오른쪽으로 동그랗게 누운 모양인데, 이 곳은 아래 방향으로 동그랗다. 옆에 있던 우간다 친구에게 한국의 초승달과 다르다고 했더니 위도 때문이라고 알려준다. 덧붙여 한국의 초승달이 오른쪽으로 동그란 것은 저녁에 봤기 때문이란다. 아침이나 낮으로는 다른 방향으로 볼록하지만, 밝은 햇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젊은 친구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는 표정을 짓자 대뜸 커피 얘기를 꺼낸다.

로부스타가 맛이 없다는 것은 한쪽 방향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편견이다. 아라비카가 갖지 못한 커피의 깊고 무거운 맛이 로부스타에 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차원이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로부스타를 이해하면 훨씬 넓은 커피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였다.

커피의 서자(庶子) 취급을 받으며 값싸고 질 낮은 커피로만 생각했던 로부스타에 대한 생각은 편견이었다. 어쩌면 크레마가 좋은 이태리 에스프레소의 깊은 맛의 비결은 품질 좋은 로부스타에 있는지 모르겠다. 품질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우간다에서도 풍미가 뛰어난 로부스타들이 생산되고, 비교적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편견을 버리고 열린 시각으로 커피를 바라보면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초승달이 언제, 어디서 봤는지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보이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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