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석학 칼럼] 애국자 대 대통령

입력
2019.12.16 04:40
29면
알렉산더 빈드먼 미국 육군 중령이 19일 하원 청문회장에 제복을 입고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알렉산더 빈드먼 미국 육군 중령이 19일 하원 청문회장에 제복을 입고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월 19일, 알렉산더 빈드먼 중령은 말끔한 제복에 퍼플하트훈장을 달고 하원정보위원회 탄핵청문회의 증언대에 섰다. 보기 드문 일이다. 자신의 군 경력에 손상이 갈 것을 알면서도, 빈드먼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익을 해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치이익을 챙기려는 시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것이 의무라 믿었다.

편파적이긴 하나, 미국의 모든 주요 언론은 정적인 조 바이든과 그의 아들 헌터에 대한 범죄 수사를 지시하도록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몇 달간 지속된 트럼프의 노력과 지역 내 미국 정책에 대한 그런 노력의 영향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빈드먼의 증언에서 특이했던 점은 그의 애국심에 대한 반응이었다. “어릴 적 독재정권의 억압으로부터의 피난처가 된 이 나라를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20년 동안 이 위대한 나라를 대표하고 보호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자주 애국심에 호소하고 군의 용맹함을 칭찬하는 공화당의 행보를 보면, 이 정도면 공화당 선전포스터 모델 감이다. 그런데 공화당은 이라크전 참전으로 얻은 파편이 아직 몸 속에 박혀 있는 빈드먼의 충성심을 의심하고 욕보였다. 빈드먼은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 부모에게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 형제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공화당 고문은 그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특별한 충성심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빈드먼은 자신을 직위를 붙여 정식으로 호칭하지 않은 공화당 간부 데빈 누네스와 자신에게 이중간첩 프레임을 씌우려는 폭스 뉴스의 실수를 바로잡아야 했다.

빈드먼의 봉사와 희생에 대해 감사한 것은 민주당이었다. 복무 기록이 완벽한 장교를 대하는 것이 이렇게 다른 것은 물론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공화당은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는 불법 혐의로부터 트럼프를 보호하려고 했고, 빈드먼은 그 혐의를 확인해줌으로써 그런 시도를 저지했다.

빈드먼의 충성심(유대인을 비난할 때 자주 사용하는 주제)을 꼬투리 잡으려는 공화당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애국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는 런던에서 독일계 유대인 이민자에게 태어나 영국의 애국자가 된 내 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했다. 버나드 슐레싱어는 직업군인은 아니었지만 아직 학생이었던 1915년 처음으로 자원 입대했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까지, 여왕과 국가에 대해 충분히 충성을 다했다는 정중한 말을 듣고 퇴역할 때까지 복무했다.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인 할아버지가 보여준 애국심은 그러지 않으면 반유대주의자들로부터 의심을 살 것이라 그리한 것이 아니다. 빈드먼과 마찬가지로 그의 애국심도 감사함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나라, 영국은 그를 나치의 박해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줬다. 영국에도 유대인 출입금지 클럽, 유대인 인턴을 받지 않는 병원 등 반유대주의가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이에 대해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왕립육군의료봉사단 등 자신을 받아준 곳에 충성을 다했고 그 충성도가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까지 커졌다.

빈드먼과 할아버지의 감사함이란 국적을 당연시하거나 국적에 대해 의심을 받지 않는 사람에겐, 자연적으로 생기는 그런 것이 아니다. 차별을 한 번도 경험 못 한 사람은 이런 것이 약간 불편할 수도 있다. 특정국가에 속한다는 것이 감사할 일일까? 자부심은 가질 수 있겠지만, 감사까지 할까? 사실, 감사함에서 비롯된 애국심이 가장 강할 수 있다.

감사함에서 비롯된 애국심은, 코르시카의 나폴레옹, 오스트리아 국경지대의 히틀러, 그루지야(조지아)의 스탈린처럼 소수민족이나 주변 경계지역 몇몇의 광신적 애국주의와 혼동하면 안 된다. 가장 광신적 나치당원은 체코슬로바키아와 볼차노 같이 모국 밖의 독일어권 출신이었다. 이들은 감사함보다는 다수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어 하는 욕망에 자극을 받는다.

빈드먼 가족에게 미국은 독재정권으로부터의 피난처였다. 이보다 강한 충성의 유대가 생기기는 어렵다. 빈드먼의 증언은 미국의 가장 큰 희망을 보는 듯했다. 그는 위협과 명예훼손, 트럼프 정부의 불쾌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말해도 괜찮다”고 믿고 있다.

“나에게 다오,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숨쉬기를 갈망하는 무리들을……” 자유의 여신상 아래 현판에 새겨진 자주 인용되는 이 말은 모두가 제대로 알아듣는 건 아니다. 트럼프의 이민정책 고문인 스티븐 밀러는 자신도 유대계이면서 이 말을 폄하하고 나섰다. 이민자들은 영어를 해야 된다고 하는 가 하면 엠마 라자루스의 시, “새로운 거인상”이 “미국의 가치”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라자루스의 시는 미국의 가치의 절정을 완벽히 대변한다. 자유롭게 숨쉬기를 갈망하는 무리들은 진정한 애국자이며, 역사적으로 미국이 가진 가장 큰 힘이었고 가장 꺾기 어려운 충성심이 되어 왔다. 지치고 가난한 난민들을 대하는 방법이 도둑, 살인자, 강간범으로 비난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들을 가두고, 자녀들과 떨어뜨려 놓아라. 그러면 확고부동했던 충성심이 적대감, 폭력, 테러에 무너질 것이며, 종국에는 미국의 역사적인 강점은 갈망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이언 부르마 미국 바드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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