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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최(最)동단 라디오 방송국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아시키에 있는 코린도 마을 시장에서 만난 코린도그룹 원주민 직원 가족.

올해 8~9월 인도네시아 파푸아에선 여러 차례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40여명이 숨지는 등 인명피해와 방화 및 약탈에 따른 피해가 속출했다. 특히 북부(자야푸라)와 중부 산악지대(와메나)가 심했다. “(파푸아 원주민은) 원숭이”라는 잇따른 혐오 발언과 관련 소문이 방아쇠였다. 오랫동안 응축된 원주민에 대한 차별과 파푸아의 슬픈 역사가 강력한 폭발력을 발휘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타나메라에 있는 모하마드 하타의 동상과 그가 네덜란드 식민정부에 의해 유배됐던 감옥(사진 오른쪽) 건물.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부통령을 지낸 하타는 독립과 건국의 평생 동지였던 수카르노가 장기 집권하자 미련없이 부통령직을 버렸고 지금까지도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뉴기니섬은 서구 식민시절 서쪽은 네덜란드(현 인도네시아 파푸아), 동쪽은 영국(현 파푸아뉴기니)이 점령하면서 반으로 나뉘었다. 1949년 독립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가 파푸아를 계속 지배하자 무력 충돌과 유엔 중재 등을 거쳐 1963년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1961년 독립을 선언하고 무장투쟁을 벌이기도 했던 파푸아는 1969년 인도네시아 정부에 의한 주민투표 결과를 유엔이 받아들이면서 같은 해 인도네시아의 26번째 주로 강제 편입됐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머라우케에 있는 인도네시아 최동단 국경을 넘어 만난 옆나라 파푸아뉴기니 아이들.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국경을 수시로 넘나들며 생필품을 구한다고 한다.

당시 수하르토 군부 독재 정권은 파푸아로 강제 이주 정책을 폈다. 인도네시아 전 국토를 가리키는 ‘사방에서 머라우케까지’라는 말도 이때 생겨났다. 사방은 인도네시아 서북쪽 끝 섬, 머라우케는 파푸아 동남쪽 끝 도시 이름이다. 300여 종족으로 구성된 파푸아 원주민은 곱슬머리 흑인에 가까운 멜라네시아인으로 주로 기독교를 믿는다. 이슬람교도에 자바인이 대부분인 이주민들이 지역 정계와 상권, 광산 등을 장악하면서 원주민들은 차별과 상대적 빈곤에 시달렸다. 특히 본토에서 온 군경은 원주민을 반(反)정부 세력으로 몰아 폭언, 불법 구금, 고문 등 인간 이하의 취급을 했다.

인도네시아 국토 최동단을 가리키는 기념 조형물. '사방에서 머라우케'라고 표시돼 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이번 유혈사태를 봉합하기 위해 파푸아에 대통령 별궁 건설 등을 약속하고, 직접 현지를 방문해 파푸아 동서남북을 잇는 ‘트랜스 파푸아’ 건설 현장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원주민들과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디다가 1990년대부터 코린도그룹,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한인 기업들이 진출한 파푸아 남쪽 지역은 다행히 유혈사태 때 평온했다. “산악지대 및 북부에 사는 종족들과 달리 온순한 종족이 살아서”라는 풀이가 들린다. 한인 기업들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아시키에 있는 코린도 마을 시장에서 만난 원주민 상인들.

파푸아 아시키ㆍ머라우케=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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