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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타계했다. 고인은 지난해 6월 베트남에서 귀국한 이래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샐러리맨에서 출발한 고인은 1967년 직원 5명으로 설립한 대우실업을 ㈜대우로 키워 내며 우리 경제에서 종합상사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후 전자, 중공업, 자동차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창업 30여년 만에 41개 계열사, 자산총액 76조7,000억원, 국내외 35만명을 고용한 재계 2위의 대우그룹을 일궈냈지만 1997년 외환위기에 그룹이 해체되는 비운을 겪었다.

대우 해체는 과도한 차입과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부른 불가피한 파국이라는 평가가 통설이다. 특히 ‘세계경영’을 내세우며 동유럽 등으로 진출, 396개 해외법인을 일구며 누적된 채무가 문제였다. 외환위기로 금리가 연 30%, 환율이 달러당 2,000원까지 치솟아 그룹 부채비율이 400%에 이를 정도로 상황이 급격히 악화했다. 그 와중에 21조원대 분식회계와 9조9,800억원대 사기 대출 혐의가 불거지고, 회사채 발행 제한 조치까지 맞물리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하지만 법리ㆍ재무적 평가와는 다른 맥락에서 고인의 족적은 크다. 무엇보다 맨손으로 일어나 국내외 35만명의 일자리를 만들고 유지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업적이다. 거친 도전과 질주하는 속도로 5대양 6대주를 누볐던 ‘대우 정신’은 한국경제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DNA가 됐다. 누가 뭐래도 고인은 치열하게 도전하는 기업인이었다. ‘철의 장막’ 너머에서 잠자던 동유럽이라는 낯선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고, 중국과 동남아, 아프리카의 여명기를 누비며 대한민국 브랜드를 널리 알렸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제목의 저서를 남긴 고인은 생전 한 인터뷰에서 “다 같이 잘살게 되기 전까지 우리는 게을러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상위 10%가 정신차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인의 말은 경영 비리로 얼룩진 기업인이라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격변 속에서 표류하는 지금 우리 경제와 사회를 향한 일갈이기도 하다. 기업인이자 공인으로서 고인의 공과는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고인의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은 지금 우리 경제에도 여전히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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